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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사찰국수 기행] 20. 우일 스님의 ‘바질 페스토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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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133회 작성일 24-12-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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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메이드 바질 페스토 풍미에 어른스님도 ‘방긋’

사람은 저마다의 재능을 타고났다. 
그 능한 재능이야말로 나에게 맡겨진 사명이요. 
내가 해야 할 책임이며 직분이다. 
- 법구경 -        
 

우일 스님(영천 은해사)을 만나고 돌아서던 길에 떠오른 경구 한 구절이다. 타고난 재능이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기 마련이다. 봄날에 새싹이 오르고, 겨울에 눈이 내리듯이. 

중력을 따라 지면에 향해가는 것처럼 마음도, 몸도 끝내 흐르고 마는 그런 일이 있는 것이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듯 떠오르며,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재미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재능이 제 주인인 영혼에 손을 흔드는 방식이다.

어쩌면 우일 스님의 시간은 그 오랜 친구 같은 재능과 함께 걸어온 나날인지 모른다. 출가 전에는 촉망받던 요리사로, 지금은 사찰음식과 함께 깊어가는 수행자로. 

자신이 지닌 재능으로 세상을 밝히는 일만큼 멋진 일이 또 어디 있을까. 11월의 산중 칼바람도 훌쩍 날려버리는 스님의 국수. 그 향기로운 초록의 내음이 차디찬 이 겨울을 다시 덥힌다. 

소년의 꿈
“어린 시절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내라고 하면 친구들은 대통령을 적고, 저는 매번 주방장이라고 썼어요.”

연중 무료로 차와 커피 나눔을 하는 은해사의 아늑한 산사 찻집. 그곳에서 우일 스님을 만난 날, 스님의 환한 웃음과 함께 옛이야기가 피어올랐다. 

“부모님께서 식당을 운영하셨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주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자랐지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음식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신기할 만큼 언제나요.”

출가 전, 우일 스님의 직업은 양식 전문 조리사.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길이라 생각했던 분야를 차곡차곡 배우며 성장한 시간이었다.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한 뒤 대학원을 마치고,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 조리팀과 삼성 에버랜드 유통사업부를 거쳐 국제조리직업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한 촉망받던 젊은 셰프. 

자신의 커리어에 하나하나 별을 달아가던 그때, 우일 스님은 ‘출가’라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돌아보면 소년 시절 우연히 맺게 된 은사스님(덕조 스님/은해사 주지)과의 인연이 시작이다.

“저도, 부모님도 불교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다만 마음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누님 덕분에 지금의 은사스님을 우연히 뵙게 되었어요. 부모님 생전에는 마치 친아들처럼, 제게는 큰 형처럼 의지가 되어주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너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장가 못가면 머리 깎아라’ 하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30년이 흘러 정말 그렇게 된 셈입니다(웃음).”

인연의 절기 
그저 등 떠밀 듯, 잔뜩 힘을 주어 종교의 길을 강요했다면 그리되었을까. 묵묵히 가족들 곁에서 의지가 되어주던 은사스님의 모습에 먼저 마음을 연 것은 바로 부모님들이었다. 

“아버지는 1·4 후퇴 때 함경도에서 내려오신 피란민이셨어요. 정서적 차이로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크셨지요. 하지만 늘 한결같은 스님의 모습을 보신 후 불교에 마음을 여셨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출가의 허락. 그 말씀을 선물처럼 받아안고, 스님은 미련 없이 은사스님을 찾았다. 우일 스님의 새로운 계절이 열리던 순간이다. 

사찰음식 강사로 서게 된 것 또한 ‘오랜 시간 쌓아온 견문이 있으니 공부를 계속하여 사찰음식 체계화에 보탬이 되라’는 은사스님의 말씀 덕분. 지금껏 배운 상식과 입맛의 기준마저 바꾸어야 했지만, 그 또한 행복이었다. 

“제가 요리를 했던 것도, 출가하게 된 것도 모두 부처님이 주신 기회처럼 여겨집니다. 하나하나 인연이 고리를 맺으니 다 때가 있고, 해야 할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요. 그러니 지금은 또 제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해야지요(웃음).”

바질과 민트로 가득찬 사중 정원 틈새.
바질과 민트로 가득찬 사중 정원 틈새.

스님의 허브 정원
우일 스님의 요리 내공으로 더욱 즐거운 것은 역시 함께 하는 절집 식구들이다. 오늘 선보일 ‘바질 페스토 스파게티’는 사중의 식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별식 중의 하나. 우일 스님의 전공을 살린 이 ‘서양 국수’가 나오는 날이면, 어른스님도 나이 지긋한 보살님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공양간에 들어서곤 하는 것이다. 

스님의 스파게티 비결은 바로 직접 키운 바질로 만든 페스토(소스). 이른바 홈메이드, 아니 템플메이드 바질 페스토의 신선하고, 진한 향이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풍미를 자랑한다.

“낯선 음식이라 어른스님들께서 꺼리실 것 같지만, 의외로 스님들께선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잘 드셔요. 이걸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사중의 정원 틈새에 직접 모종을 심었습니다. 쓰임이 많은 민트, 그리고 바질은 생명력이 강하니 산중에서도 잘 살아남을 거라 믿으면서요.”

한 개, 두 개 구하여 심은 모종은 이제 어느새 정원을 가득 채우고, 도량 곳곳에 푸릇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중이다. 넉넉한 양이니 여름부터 가을걷이까지 수시로 갈무리해두면 오래오래 쓰임이 있다고.

어느새 스님의 후라이팬 안에서 파스타가 춤추는 시간. 적당히 달궈진 팬에서 페스토를 볶다가 삶은 스파게티 면을 넣고, 면수를 더해 간을 맞춰준다. 본래 바질 페스토에는 바질과 잣이 주재료지만, 한창 잣의 가격이 올라 캐슈넛을 갈아 대체해 주었다. 

자, 이제 뜨끈한 파스타 위에 특식용 치즈 가루를 넉넉히 뿌려 섞으면…. 

신선한 허브의 향, 캐슈넛의 부드럽고 찰진 고소함, 치즈의 짭짤함이 더해진 이 황홀한 맛에 어찌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저 먼 이국의 국수가 우리네 산사에서 다시 ‘승소’로 피어나는 순간이다. 

우일 스님은 대중에게 더 가까워질 방법을 전하고 싶다.
우일 스님은 대중에게 더 가까워질 방법을 전하고 싶다.

스님의 꿈 
“이렇게 스파게티를 낼 땐 주로 수프를 함께 내요. 평범한 시판 수프라도 브로콜리, 당근 같은 채소를 푹 익혀 넣으면 맛과 영양을 더할 수 있으니까요. 한번은 수프를 드신 노보살님들께서 그러세요. 처음 보는 미음이 구수한 게 아주 맛있었다고, 또 만들어 달라고요(웃음).”

우일 스님은 내년 3월부터 서울에서 본격적인 사찰음식 강의를 시작한다. 강의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사찰의 소임을 내려놓은 요즘. 

새벽 예불을 마치고 부처님께 인사를 올린 뒤 가만히 앉아 숨을 들이마신다. 우일 스님은 겨울 공기만이 줄 수 있는 그 상쾌함을 사랑한다. 

“저는 아직도 음식이 맛있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맛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저의 숙제이지요. 꾸준히 배우고, 수행하는 것만이 답일 겁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길을 찾을 테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전국의 사찰음식들도 모두 기록하고 싶습니다. 진입 장벽을 낮춘 레시피로 대중들이 사찰음식과 더 가까워질 방법도 전하고 싶고요. 언젠가는 그렇게 제 몫을 해낼 때가 오지 않을까요.”

환히 웃음 짓는 스님에게서 꿈꾸는 이의 힘을 본다. 제 몸을 다해 맑은 향기 내는 저 새 풀 같은 푸른 힘. 그러니 멀리, 아주 먼 어느 곳까지 퍼져나가 세상을 밝히기를. 

▶한줄 요약 
적당히 달궈진 팬에서 페스토를 볶다가 삶은 스파게티 면을 넣고, 면수를 더해 간을 맞춰준다. 뜨끈한 파스타 위에 특식용 치즈 가루를 넉넉히 뿌려 섞으면…. 신선한 허브의 향, 캐슈넛의 부드럽고 찰진 고소함, 치즈의 짭짤함이 더해진 이 황홀한 맛에 어찌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일 스님의 ‘바질 페스토 스파게티’

 재료 | 신선한 바질잎 100g ,견과류(잣, 캐슈넛, 아몬드 등) 50g, 올리브 오일 70g, 소금/후추 약간. 스파게티 면 220g, 파르메산 치즈 또는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20g, 올리브 오일 20g

만드는 법 | 
① 신선한 바질 잎은 깨끗이 세척하고 체에 발쳐 물기를 거둔다.
② 견과류는 마른 팬에서 구워준다. 
③ 바질 페스토 재료 모두 믹서기에 넣고 약간 거칠게 갈아준다 
④ 냄비에 소금. 올리브 오일을 넣은 충분한 양의 물을 끓이고 스파게티 면을 8~9분 정도 삶아준 뒤 체에 밭쳐준다. (냉수로 씻지 않는다)
⑤ 팬에 올리브오일과 면을 넣고 살짝 볶아 준 뒤 면수 반 컵. 바질 페스토 1/2를 넣고 빨리 볶아서 완성한다.
⑥ 그릇에 예쁘게 담아준 뒤 치즈를 뿌려주면 완성.

우일 스님의 tip | 바질잎 대신 참나물을 사용해서 참나물 페스토를 만들어도 좋고, 잣과 견과류가 비쌀 땐 캐슈넛만 사용해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