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신비로운 산에서 얻어가는 전혀 신비롭지 않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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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템플스테이] 공주 갑사
능선의 형세가 어떻게 보면 닭의 볏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용 같다는 계룡산(鷄龍山)은 신령한 산이다. 결정적으로 <정감록(鄭鑑錄)> 때문에 그렇게 됐다. 한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예언서이다. 정씨 성을 가진 진인(眞人)이 이씨의 조선을 무너뜨리고 세운다는 새 나라의 도읍으로 지목됐다. 진짜 수도가 될 뻔도 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멘토였던 무학대사의 제안으로 개경에서 계룡산 남쪽 ‘신도안(新都案)’으로 천도를 하자는 안이 논의됐다. 교통이 불편해 최종 탈락했다. 풍수적으로 완벽한 길지라는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보통명사로서의 산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인데 전국에 그러지 않은 산은 없다. 더구나 신들의 산이라기보다는 자칭 신들의 산이다. 방방곡곡 무속인들이 몰래 와서 제사를 지내고 낙서를 해댔다. 공무원들이 이를 단속하고 제지하고 돼지머리 치우느라 고생했다.
신비롭다는 건 기본적으로 의심스럽다는 것이지만 아무튼 역사는 유서가 깊다. 통일신라 때부터 계룡산은 서악(西嶽)이라 불렸다. 서쪽의 큰 산이란 뜻으로 동악은 토함산, 남악은 지리산, 북악은 금강산, 중악은 팔공산이다. 삼국통일 이후 한결 넓어진 국토를 확인하고 자랑하기 위한 표식이었을 것이다. 고찰들도 수두룩하다. 조계종 제6교구본사인 마곡사를 비롯해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이 들어섰다. 갑사(주지 탄공스님)는 서기 420년에 창건됐다고 하며 679년 의상대사가 화엄종 10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지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원래 명칭은 계룡갑사였다. 계룡산의 절들 가운데 제일 먼저 지어진 절이자 그야말로 ‘갑(甲)’이라는 의미다. 템플스테이도 다양하게 운영된다. 무문관(無門關)도 체험할 수 있다. 상관의 괴롭힘에 못 이겨 명예퇴직이라지만 조기퇴직을 한 공무원이 최근에 3개월 동안 하고 갔다.
‘오늘’만 사는 사람만이 착하다
예로부터 ‘춘(春)마곡 추(秋)갑사’라 하여 가을 경치가 일품이다. 올해는 더위가 턱없이 길어 단풍은 11월 초가 절정이겠다. 지금도 이미 조금씩 꿈틀대기는 한다. 10월12일에 찾았는데 ‘선요가명상’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요가도 배우고 선(禪)명상도 배운다. 남성 4명이 각자 따로 와서 금요일부터 즐겼다. 갑사의 템플스테이 공간은 경내에서 제법 떨어져 있고 급경사를 올라야 만날 수 있다. 외딴 자리에 지어진 ‘고경원’과 ‘명월당’ 두 채가 아담하고 포근하다. 가뜩이나 조용한 산사인데 여기는 유난히 절대적으로 고요하다. “혼자 와서 좀 멋쩍었는데 프로그램도 알차고 친구도 사귀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는 소감은 순박하다. ‘옛 거울’이라는 고경(古鏡)과 ‘밝은 달’이라는 ‘명월(明月)’은 인간의 순수하고 거룩한 본성을 가리킨다. 인간은 위대하다지만 별 내용 없이 그저 착하게만 살아도 더 바랄 게 없겠다.
동물은 오늘만 살지만 시계와 달력을 발명한 인간은 미래 없이는 못 산다.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가운데 하나가 무당이고,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 가운데 하나가 예언이다. 어느 시대에나 각종 도참(圖讖)과 비기(秘記)가 난무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정감록>은 무엇을 원본이라고 정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이본(異本)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론 찬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계기 역시 현재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습성 덕분이다. 앞날을 부지런히 점치고 셈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끊임없이 계획하고 도모한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투자를 하고 주식을 산다. 현재만을 사는 동물은 서로 공존할 수 있지만 태생적으로 동상이몽인 인간은 필연적으로 상대를 이용해먹는다. 야망이 클수록 잔인하고 교활하다.
지도법사 태원스님은 선승(禪僧)이고 차담(茶談)에서 자신만의 수행체험을 들려주었다. 화두에 몰입하다가 문득 호흡이 마치 컴퓨터 CG처럼 형상화되어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조금 더 집중하니 보름달처럼 두둥실 떠서 멈추더라는 이야기다. 한창 수행할 때는 수백 미터 떨어진 계룡산 숲속에서 뛰노는 토끼의 생김새가 정확히 보였다. 이른바 ‘천안통(天眼通)’이 열린다는 게 이런 식이다.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대지가 잠긴다”거나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는다”거나 하는 고승들의 오도송(悟道頌)이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점도 일깨웠다. 참가자들은 신통력에 솔깃해했는데 본질은 아무래도 다른 곳에 있다. 깨달으면 정말로 삶이 달라지느냐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상처받지 않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느냐 이것이다. 스님은 “별다를 건 없는데 좀 덜 이기적이게 되고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기는 한다”고 답했다. 부처님 인연법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의 속셈과 흐름을 볼 수 있게 됐고, 공존하지 않으면 자멸한다는 이치를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날마다 좋은 날’
어릴 적 놀이터에 있던 시소의 기억도 떠올릴 수 있었다. 시소의 가운데에 서서 균형을 잡으며 놀았다. 계속해서 흔들리고 위태로운데 발밑에서 올라오는 긴장과 탄력이 묘한 청량감을 주었다. 불교의 핵심은 중도(中道)인데, 태원스님은 무게중심이 꼭 중앙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죄가 없어지느냐”고 묻자 중국 당나라 운문 선사는 “(죄가) 수미산처럼 거대하다”고 타박한 예를 들면서. ‘악(惡)으로 선(善)을 계도한다’는 엄청난 이론을 보유한 게 불교다. 정답이 가운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공평하다는 것도 정의롭다는 것도 편견이고 허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도 엄연히 진실이고 거기서도 해낼 수 있는 일은 있다. ‘일일시호일(一日是好日)’은 운문의 대표적인 화두다. 태양 아래서는 다들 똑같이 눈부시고 해맑다. 행여 누군가 시체로 뒹군다손 순환이고 정화다. 그러니 아무리 봐도 날마다 좋은 날이다. 내 기분에만 좋지 않은 날이 있을 뿐이다.
선(禪)요가명상(2박3일)
오후 3시부터 사흘째 정오까지. 모닝 요가, 선명상, 가마니길 걷기 명상, 용문폭포 탐방 등
※ 무문관 템플스테이도 운영
찾아가는 길
주소
충남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내비게이션 ‘갑사 주차장’ 검색.
강남고속버스터미널(30분 간격) 공주터미널 출발 → 공주터미널 입구 우측 버스정류장에서 옥룡동 주민센터 방향 버스 승차 → 옥룡동주민센터 하차 → 우측 횡단보도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320번 버스 승차 → 갑사 주차장 도착
문의: (041)857-8921
예약: www.templestay.com
[불교신문 제3842호 / 2024년 10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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