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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신문] [사찰국수 기행] 19. 승현 스님의 ‘추억의 별식, 국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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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116회 작성일 24-11-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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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도 ‘보양식’ 만든 귀하디 귀한 공양

“화엄벌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신라 시대에 원효 스님이 계실 때 이야기예요. 하루는 원효 스님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옛이야기가 노래처럼, 바람처럼 흘러 오른다. 저 푸른 산고지에서 선정에 든 원효 대사와 그를 찾아 신라의 땅을 찾아 헤매는 당나라 사람들. 그 모두를 품고 원효가 화엄경을 설했다는 저 천성산의 거대한 들판이. 
듣는 이를 일순 천년 신라로 데려가 어느새 그날의 풍경과 하나 되게 하는 힘. 이 마법 같은 시간여행의 키를 잡은 선장은 바로 승현 스님(진주 보림사 주지)이다. 
언제라도 그리운 화엄벌이다. 머리 위에는 광활한 하늘이, 발아래는 신성한 땅. 돌아보면 들꽃 같은 도반들이 미소짓던 그 산의 푸르른 벌판. 오늘 승현 스님의 ‘승소’는 그곳 화엄벌에 있다. 

마음의 고향에서
“제 추억 속의 잊히지 않는 국수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라면입니다(웃음).” 
언제였던가, 승현 스님께 국수 이야기를 청한 날. 장고(長考) 끝에 조심스레 전하신 스님의 대답이다. 
스님들은 국수를 좋아하여 ‘승소’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만, 라면은 더욱 별식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평소에는 쉬이 먹을 수 없어도,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를 땐 부러 매운 라면을 찾는 때가 있다고. 또 너무 담백한 산중식단에 지방 성분이 부족할 때면 보양식 대용으로 먹곤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승현 스님의 라면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먹고 싶다 하여 다시 먹을 수도, 또 같은 맛을 내는 것 또한 쉽지않은 특별한 한 그릇의 추억. 
“천성산 내원사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내원사 선방에서는 3년 결사를 지냈어요. 꼼짝 않고 선방에 들어선 스님들도, 또 뒷바라지하시는 스님들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때 모두 함께 하루를 내어 산행을 떠났습니다. 제 추억 속 국수는 그날 함께 공양한 라면입니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경남 양산의 천성산. 그리고 그 아름다운 산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내원사. 지금도 뭇 생명 살아 숨 쉬는 그 산에 스님의 추억이 머문다. 

승현 스님은 선방 수행 중 맛본 라면을 떠올리며 “말할 수 없이 향긋하던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승현 스님은 선방 수행 중 맛본 라면을 떠올리며 “말할 수 없이 향긋하던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산행 가는 날
1300여 년 전, 원효 대사가 산사태 위기에 처한 당나라 운제사의 대중을 도력으로 구해내고, 이때 구출된 천 명의 대중을 이끌고 불법을 닦았다는 내원사의 창건설화. 그리고 원효 대사가 그 대중들에게 〈화엄경〉을 강설한 저 푸른 벌판이 바로 오늘날 천성산의 상징하는 화엄벌이다.
내원사는 6·25 전쟁 당시 도량이 소실되는 비극을 겪었지만, 한국불교 비구니계의 3대 강백(講伯)으로 전해지는 수옥 스님의 원력으로 독립된 비구니 선원이 되어 새로이 중창됐다. 그리고 1979년 마침내 18명의 스님들을 필두로 첫 내원사 3년 결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 청청한 역사를 따라 수행의 결기를 높이던 시절. 천성산 산행은 절박한 수행의 나날 중에 모두의 기운을 돋우고, 다시 의지를 세우는 귀한 외유의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면 폐부를 가득히 채우던 맑은 산 공기의 맛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삼삼오오 줄지어 산을 오르다 보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던 화엄벌. 
그 황홀한 전경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시간은 천년을 거슬러 오래전 신라의 그 날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화엄경〉을 설하던 원효 대사와 천 명의 제자들 속에 승현 스님도, 또 곁에 선 도반들도 함께 살아 머무는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간.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취사가 가능한 천성산 계곡에 도착한다. 비로소 이날의 특별한 만찬이 시작될 시간이다. 

보통, 그 이상의 라면
“다 같이 메고 올라온 먹을거리며, 버너를 꺼내 공양 준비를 합니다. 저마다 맡은 대로 척척 준비를 시작하면, 다른 스님들은 산나물을 뜯어 오지요. 지천에 널린 참나물, 곰취, 달래 같은 것들을요. 다 모아 놓으면 그런 부자가 없어요(웃음).” 
라면이라 하지만 속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바로 천성산이 주는 풍성한 산야초가 그 맛의 진짜 주인공이다. 
“먼저 팔팔 끓는 물에 라면 스프를 넣고, 반드시 된장을 함께 넣습니다. 그리고 절에서 챙겨온 감자며 콩나물, 직접 키운 호박, 표고버섯 등을 먼저 끓여요. 그래야 국물 맛이 좋고, 영양도, 간도 맞거든요.” 
구수한 국물 냄새가 진동하면 이제 라면을 넣을 차례. 특별한 별식인 만큼 먹는 방법도 차례가 있다고. 무엇보다 갓 딴 산야초를 뜨거운 채수에 살짝 데쳐 먹는 것이 첫 순서다. 입안 가득 차오르는 향긋한 내음에 감탄이 절로 나는 순간!
다음으로는 잘 익은 라면을, 그리고 마지막엔 산채 향이 푹 우러나온 국물에 국수를 끓여 마무리한다. 라면은 쉬이 구할 수 없으니 조금 적게 넣고, 대신 국수로 부족한 양을 채우는 것. 숟가락으로 푹푹 잘라 넣은 감자며 호박. 툭툭 뜯어 넣은 표고버섯은 얼마나 달큰하던지. 
“산중에서 그보다 더 좋은 보양식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말할 수 없이 향긋하던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산의 품에서 머물며 살아가는 수행자들에게만 허락된 귀한 한 끼. 가장 소박하고도 무엇보다 호사했던 그 날의 공양은 아직도 그 힘을 발휘 중이다. 

절에서 구할 수 있는 채소들을 툭툭 넣어 구수한 국물을 끓여내는 게 포인트다.절에서 구할 수 있는 채소들을 툭툭 넣어 구수한 국물을 끓여내는 게 포인트다.

가장 좋은 것 
“이 국수라면은 칼질보다 이렇게 숟가락으로, 손으로 투박하게 잘라 넣어야 맛있어요.” 
비록 오래전 그 날의 산야초는 구할 수 없지만, 툭툭 호박과 버섯을 잘라 넣고 추억의 맛을 재현해 본다. 진한 된장과 라면 스프가 어우러진 국물, 온갖 채소와 국수가 더해진 든든한 한 끼가 스님의 빠른 손끝에서 뚝딱 차려진다. 
훌훌 들이켜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라면이 아니라 마치 국밥 한 그릇을 해치운 것처럼 든든함이 차오르는 한 그릇. 라면 하나조차 ‘보양 음식’으로 여기는 삶의 태도는 가벼운 인스턴트 음식조차 영양 풍부한 양식으로 둔갑시키고 만다.
“얼마나 복이 많은 생입니까. 인간의 몸을 받아 불법을 만났습니다.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매일 더 합니다. 스쳐 가는 아름다움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토록 무한하고, 위대한 진리가 있지 않습니까.” 
매일 아침 〈화엄경〉 독송을 멈추지 않는 승현 스님의 하루. 흔들리지 않는 마음 갖기를 기원하며 매일 선방에 들던 젊은 날의 그때와 오늘이 다르지 않다. 
이제는 사라진 천성산의 군부대며 지리산 천왕봉으로 향하던 깊은 산길, 화두를 들고 올라 잠시 머물다 오던 산정상의 그 자리까지. 스님의 막힘없는 기억을 따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시간을 엿본다. 
영원한 진리를 깨닫길 바라는 수행자의 마음이 머무는 곳. 천 개의 별이 빛나는 그런 벌판이 있다. 아름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승현 스님의  국수라면 (3인분 기준)

재료 : 라면(매운 국물 종류), 일반 국수 1인분, 재래식 된장 1.5 TS, 작은 감자 2, 애호박 1, 생표고 넉넉히, 콩나물 한 줌, 홍고추 1

만드는 법 :
① 분량의 물을 끓인 후, 한입 크기로 잘라준 감자를 넣어준다.
② 애호박을 숟가락으로 툭툭 잘라내어 함께 익힌다.
③ 감자와 애호박이 반쯤 익었을 때 생표고, 홍고추를 큼직하게 잘라 넣어준다.
④ 라면 스프, 물에 갠 된장을 함께 넣어 끓여준다.
⑤ 먼저 라면을 넣어 익힌 후, 국수를 넣어준다.
⑥ 면이 익어갈 즈음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끓여내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