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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단풍이 아니더라도…‘피난’ 오기 좋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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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259회 작성일 24-11-1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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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템플스테이] 영동 영국사

기어이 가을이 오고 단풍이 들어 영국사가 위치한 천태산도 노랗고 빨갛게 물들었다.
기어이 가을이 오고 단풍이 들어 영국사가 위치한 천태산도 노랗고 빨갛게 물들었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모질고 나무들도 살아남으려면 겨울을 버텨야 한다. 가을이 되면 기온이 떨어지고 일조량이 줄어든다. 광합성(光合成)은 빛을 이용해 양분을 만들어내는 작용이다. 가을에 광합성을 하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식물들은 광합성을 스스로 포기한다. 싱싱하게 빛나던 초록색의 엽록소를 더는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무가 갖고 있던 본연의 색깔이 드러난다. 안토시아닌과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지닌 나무는 붉은 단풍으로, 카로틴과 크산토필 색소를 지닌 나무는 노란 단풍으로 물든다. 결국 단풍이 본질이고 엽록소는 일종의 화장(化粧)과 같은 셈이다. 멜라닌 색소의 양에 따라 백인종과 흑인종 등 피부색이 결정되는 인간과 비슷하다. 상황이 더 악화하면 낙엽(落葉)이라는 ‘기술’로 버틴다. 숟가락 들 힘마저 없어지면, 특수한 세포층을 형성해 몸에서 잎을 분리하고는 기나긴 휴면에 들어간다. 이처럼 죽지 않으려면 최대한 가볍게 살아야 한다. 군살이든 번뇌든 겉멋이든 다 내려놓고.

화려한 ‘과거’와 어두운 ‘현재’

영동군은 충청북도의 맨 아래쪽에 있는 동네다. 충청남도 경상북도 전라북도가 모두 맞닿아 미묘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생활권 역시 청주보다는 대전이나 김천과 가깝다. 온통 산으로 뒤덮여 있어 여름이 상대적으로 덥지 않다. 그 대신 겨울에는 더욱 매서운 추위를 감수해야 한다. 일교차도 매우 크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이지만 반면에 열매가 아주 달다. 당도는 포도당이 결정한다. 야간온도가 급격히 낮아지면 광합성의 산물인 포도당은 온도가 줄기보다 높은 과실이나 뿌리로 이동한다.

영동은 예로부터 과일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포도 재배가 왕성하여 아예 와인(Wine) 공장이 있다. 감이든 사과든 배든 복숭아든 자두든 인삼이든 뭐든 잘 자란다. 인삼 버금가게 부가가치가 높은 호두도 참 많이 나는데 그래서 조그마한 청설모가 멧돼지만큼 무서운 유해조수로 취급받는 지역이다. 자연의 혜택이 풍부해서인지 문명은 설 자리가 좁다. 라디오 수신마저 안 되는 곳이 꽤 있다. 신작 영화를 보려면 대전이나 구미로 가야 한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어디에 살아도 어디든 조붓하다.

영국사(주지 현우스님)는 영동군의 산물답게 깊숙이 숨어 있다. ‘충북의 설악’이라는 천태산 중턱에 위치했다. 서기 668년(신라 문무왕 8년)에 창건됐다고 전한다. 고구려가 멸망한 해인데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른다. 고려 명종 재위 시인 12세기에 원각국사가 중창하며 커졌다. 훗날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직접 왕명을 내려 전각을 여러 채 새로 짓고 국청사(國淸寺)라 이름했다. ‘왕의 절’이라는 뜻이고 영국사가 자리한 땅은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번화했을 것이다.

경산부도(京山府道)는 고려의 22개 도로 가운데 하나였고 경북 김천을 기점으로 충북의 영동 옥천 보은, 경북의 성주와 상주를 연결했다. 중간에 25개의 역참이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옛 국가의 모든 도로는 왕이 머무는 수도를 위한 길이고 왕의 번창과 안위를 위한 길이었다. 고려 공민왕은 개경까지 점령한 홍건적을 피해 경산부도를 따라 몽진했다. 국청사에서 나라의 안녕을 비는 재를 올렸으며 불사를 다시 일으키고 영국사(寧國寺)라 개명했다. 현재는 진입로 하나 변변치 않다. 길이 거칠고 구석져 예나 지금이나 은신하기는 좋다.

‘가볍게’ 살아야 죽지 않는다

지나간 역사는 찬란하다. 영국사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를 비롯해 승탑(보물 제532호),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후불탱화(보물 제1397호)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즐비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명물은 은행나무. 수령(樹齡)이 1000년 이상으로 짐작되며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223호다. 중건할 때 심지 않았을까 한다. 높이 31미터 둘레 11미터로 전체적인 형상이 공룡처럼 거대하고 한편으론 괴기스럽다. 해마다 11월이면 은행나무 앞에서 산신을 위한 당산제를 열고 관광객들도 이즈음에 북적인다. 이것 말고도 주변 단풍이 모두 잘 들었다. 템플스테이 또한 ‘은행나무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운영된다. 울긋불긋 달아오른 숲을 구경하고 108배하고 소원등(燈)을 만든다. 천태산의 기운이 좋아 여기서 자면 잠이 잘 온다고 한다.

나무들도 경제를 안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까닭이 그래서이다. 광합성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광합성을 일으키면서 생기는 손해가 더 크니 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가진 것 전부 내팽개치고 무작정 겨울잠을 청하는 일도 나무들만의 절치부심이요 와신상담이라 하겠다. 목숨보다 중한 것은 없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살고 봐야 한다. 다만 당사자들에겐 고통과 위기의 증거이지만 제3자인 인간들은 아름답다며 환호한다는 게 이 세상의 또 다른 모순이다. 홍건적의 난 이후 이성계를 위시한 신흥 무인들이 득세했다. 고려를 무너뜨린 건 홍건적이 아니라 홍건적을 제압한 고려의 장군들이었다는 점에서 그 모순의 내구성을 느낀다. 단풍과 낙엽에 어두운 인간사회에서는 정직보다 반칙이 효율적이다. ‘균형발전’이요 ‘지방분권’이라지만 본래 도로라는 게 한쪽이 다른 한쪽의 모든 것을 빨아먹기 위한 장치인 법이다. 길이 도무지 안 보이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 영국사 템플스테이

은행나무처럼(1박2일)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108배, 소원등 만들기, 스님과의 차담, 망탑봉 산책 등.

 

찾아가는 길

[주소] 충북 영동군 양산면 영국동길 238

옥천역 하차 → 건너편 우체국 옆 버스 집결지 → 양산행 버스 711번 탑승 → 누교리 도착 → 도보 25분 후 영국사 도착.

영동역 하차 → 오른쪽 버스 승강장 → 명덕리행 버스 121번

 

문의: (043)743-8843
예약: www.templestay.com

 

[불교신문 제3845호 /  2024년 11월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