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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식재료와 ‘죽착합착’ 순간 만들어야 최상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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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3,585회 작성일 22-04-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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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 


백양사 천진암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에게 사찰음식을 시연중인 정관 스님. 장정필 객원기자 

백양사 천진암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에게 사찰음식을 시연중인 정관 스님. 장정필 객원기자


지난 3일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 2022’ 주최 측은 한국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正寬·66) 스님을 ‘올해의 공로상(Icon award)’ 수상자로 발표했다. “정관 스님은 사찰요리라는 원칙 안에서 창의성, 기술력, 제철 식재료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아시아 대륙과 그 너머 사람들이 존경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했다”며 “이번 공로상을 통해 풍미와 혁신적인 요리에 대한 그녀의 깊은 열정과 업계에서의 전설적인 위상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2022’는 아시아를 6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별로 셰프, 음식 칼럼니스트, 미식가 등으로 구성된 53명이 자국 레스토랑 5개, 타국 레스토랑 2개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총 318명의 투표 결과를 집계해 1위부터 50위까지 아시아 지역 최고의 레스토랑을 선정하는데, 4년 전부터 레스토랑 순위 발표 전(올해 발표는 3월 29일이다) 아시아 지역 음식문화발전에 공을 세우고 모든 셰프들의 존경을 받는 원로에게 ‘올해의 공로상’을 수상했다. 정관 스님이 그 네 번째 주인공이다.


남은 과일, 햇볕에 말려뒀다 양념으로


백양사 천진암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에게 사찰음식을 시연중인 정관 스님. 장정필 객원기자 

백양사 천진암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에게 사찰음식을 시연중인 정관 스님. 장정필 객원기자 


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백양사 천진암 주지인 정관 스님은 17세에 출가해 50여 년 간 사찰음식에 몰두했다. 식당에서 일해 본 적도, 식당을 운영한 적도 없지만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줄지어 찾는 스승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2017년 넷플릭스가 만든 음식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 시즌3에 출연하면서다. 정관 스님을 비롯해 전 세계 유명 셰프 6명의 요리와 철학을 보여주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해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될 만큼 화제였다.


이후 3년 간 세계 각지의 셰프·미식가 2000여 명이 천진암을 찾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자연그대로의 수수한 텃밭과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음식을 직접 보고 맛보고 배우기 위해서다. 코로나19로 외국인의 발길은 줄었지만 요즘도 백양사 템플스테이를 찾는 이들은 천진암에서 정관 스님과 반나절을 보낸다. 지난 6일 천진암으로 찾아갔을 때도 정관 스님은 열두 명의 사람들과 함께 점심 공양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디서 나고, 어떻게 내게 왔는지 식재료의 여정을 알아야 제대로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식재료를 알아가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같죠.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건 수행입니다.”


정관 스님 요리에는 레시피가 없다. 그래서 요리책을 쓴 적도 없다. 그날 그 순간에 맞닥뜨린 식재료의 종류와 상태에 맞게 양념이 달라지고 조리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찰음식은 식재료 하나도 자라나는 성장 과정에 따라 섭생을 어떻게 달리 하면 우리 몸에 들어와 좋은 에너지를 만드는지 알려주는 음식이에요. 예를 들어 나물은 처음 난 여린 잎은 소금 간만 해서 먹어도 맛있지만, 10일 정도 지나면 소금에 집간장을 보태야 하고, 더 시간이 흘러 잎과 줄기가 억세지면 소금·집간장·깨소금을 넣어 무치고, 더 이후에는 기름에 볶거나 물에 삶거나 쪄야 몸에 거슬림 없이 먹을 수 있어요.” 스님이 외국에 나가 사찰음식 시연을 할 때면 풋풋한 연근과 5년 된 연근 장아찌 등을 함께 가져가 그 맛과 질감을 비교시키는 이유다.


이처럼 식재료는 하나인데 요리법과 맛·질감은 스무 가지도 넘고,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만 가지고도 외국의 유명 레스토랑 못지않은 다이닝 코스를 차려낼 수 있다고 하면 외국인 셰프들은 깜짝 놀라며 스님에게 그 비법을 묻는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모든 생명체가 활발해서 좋은 식재료들이 많이 자라고, 나는 그런 자연과 에너지를 소통하며 죽착합착(竹着合着)의 순간을 만드는 거죠. 불교에서 ‘주인과 객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인연’을 말하는데 이때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거든요. 시금치를 먹을 때 시금치 본연의 맛과 향이 풍부해서 입에서 살살 녹으면, 먹는 사람은 ‘바로 요맛이구나!’ 기쁨을 알게 되고, 시금치도 ‘내 할 바를 다했으니 이대로 사라져도 좋구나’ 하겠죠.(웃음) 그런데 입에 들어와서 거칠고 마음에 거슬리게 음식이 만들어지면 시금치랑 인간이랑 마음이 어긋나서 시금치를 미워하고 안 먹게 되잖아요.”


소식하고 식재료 허투루 버리지 마라


백양사 천진암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에게 사찰음식을 시연중인 정관 스님. 장정필 객원기자 

백양사 천진암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에게 사찰음식을 시연중인 정관 스님. 장정필 객원기자 


스님의 주방은 단정하고 간소하다. 10여 가지가 넘는 음식을 만들면서도 설거지 거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불도 하나, 팬도 하나, 무침용 큰 그릇도 하나. 양념을 무쳤던 손도 매번 씽크대에서 씻지 않고, 큰 그릇에 미리 담아둔 따뜻한 물에 살짝 담가 양념만 떨어낸 후 깨끗한 마른행주로 닦아가며 요리를 마쳤다. “물과 에너지, 시간의 낭비가 있으면 안 되죠. 모두 자연과 환경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식재료를 뭘 사용하고, 어떻게 사용할지 미리 생각해서 다듬어 놓으면 그 뒤부터는 물 한 그릇으로 6~7가지 나물을 데칠 수 있어요. 양념을 무칠 때도 깨끗하고 순한 양념에서 기름을 많이 사용하고 진한 양념 순서대로 하면 그릇도, 팬도 설거지 없이 하나로 충분하죠.”


식재료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도 스님의 철칙이다. 두부 소를 넣기 위해 파낸 애호박 조각은 된장찌개에 넣고, 표고버섯을 볶은 팬으로 간장 떡볶이를 만들었다.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를 허투루 쓰지 않고 잘 관리하는 일은 사찰음식의 기본이죠. 제 아무리 외국의 유명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 근무했어도 나와 함께 있으려면 무조건 식재료를 알뜰하게 다듬고, 제대로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해요.”


제철에 못다 먹은 과일은 얇게 썰어서 햇볕에 잘 말려뒀다가 음식 양념 또는 고명으로 쓴다. 시금치나물·톳두부·세발나물느타리버섯무침에 각각 들어간 향긋한 맛과 향의 말린 귤·키위·귤껍질 가루는 나물의 담백함과 어우러져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오묘한 풍미를 느끼게 했다. 나물 반찬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맛이다. “겨울에 필요한 비타민C를 보충해주면서 나물과 과일이 에너지를 서로 교환하는 거죠. 어느 음식에 뭘 넣을까 정해진 것은 없어요. 오늘은 시금치나물에 귤 말린 걸 넣었지만 내일은 또 달라져요. 순간의 인연법으로 요리하는 거예요.” 규칙 안에서 즉흥적인 요리를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 정관 스님 편 영상 도입부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정관 스님도 사람들에게서 상상력의 씨앗을 얻는다. 봄나물이 나오는 때면 천진암 주변 5일장을 빠지지 않고 훑는다는 그는 “시장에 가면 삶의 활력이 느껴진다”고 했다. “조그만 바구니 하나 놓고 나물 파는 아지매, 할매들을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이죠. 그때 내가 불쑥 묻죠. ‘할매는 이 나물을 어떻게 해먹었어?’ ‘아따, 이건 이렇게 하면 맛있지’ ‘그러면 양념은 뭘 치나?’ ‘할매, 이 냉이는 왜 저 집보다 뿌리가 더 길어?’ ‘아, 뿌리가 긴 게 참냉이지, 여태 그것도 몰랐나’ 그렇게 시장에서 사람마다, 집집마다 다르게 먹는 법을 배우니 냉이 하나 갖고도 먹는 법이 여러 개일 수밖에요.”


정관 스님은 인터뷰 마지막에서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예쁘게 모양내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 음식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식은 못 해도 되요. 자연과 어우러지는 섭생 방법을 깨우치고,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소식하고, 탐욕 없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며 에너지를 공유하는 방법을 아는 게 중요해요. 내가 사찰음식으로 바깥사람들과 만나는 이유도 꼭 수행자가 아니어도 음식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장성=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