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신문][사찰국수 기행 스님이 웃는다] 12 동원 스님의 사과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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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사과 한 알에 깃든 ‘자비 방편’
“사찰음식 교육이란 어찌 보면 불가의 가르침과 대치되는 일이예요.”
불과 5분 전까지 두 시간에 걸쳐 사찰음식 강의를 마친 동원 스님의 담담한 한 마디에 슬며시 눈이 커졌다.
자리에 한 번 앉을 새 없이 썰고, 다지고, 삶는 과정을 시연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과정을 숙지시키는 것. 쉼 없이 몸을 움직이면서도 수강생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최선의 답을 해야만 하는 120분의 퍼포먼스. 스님은 방금까지 그 시간을 홀로 오롯이 채우고 오신 참이었다.
“오관게에 나와 있듯이 불가에선 음식의 맛을 탐하지 말고, 수행을 위한 약으로 여길 것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사찰음식 교육을 하다 보면 이렇게 해야 맛있다, 저렇게 하면 맛이 더 좋아진다 하고 수없이 말하게 되거든요(웃음).”
동원 스님의 이야기에는 오랜 시간 ‘도마를 경전으로’ 삼아 걸어온 지난 여정, 그 안의 숱한 문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찰음식이 참 좋은 포교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우리 인생사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나이, 성격, 종교는 저마다 달라도 먹고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요. 서로의 벽을 허물기에 먹고 사는 이야기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요. 사찰음식은 불법을 전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문턱의 방편이라고 믿습니다.”
큰 나무가 타는 법
방편(方便).
중생의 교화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법. 가르치는 이는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배우는 이의 처지를 먼저 헤아려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불가의 방편이다.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소통하기 위한 동원 스님의 수업은 ‘맛있는 약’을 전하기 위한 이 시대, 오늘의 새로운 방편인 셈이다.
동원 스님이 사찰음식과 연을 맺은 것은 수원의 봉녕사에서 도감 소임을 맡아 살던 때. 어른스님들의 강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사찰음식 전문가 자격증을 딴 것이 시작이었다. 대중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하고, 이후 10년간 머물렀던 봉녕사를 떠나 동국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도 어언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법당보다 공양간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며 웃는 동원 스님. 그 웃음에서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맞닥뜨렸던 고민과 깨달음의 농축된 시간이 전해진다.
“꽤 긴 시간 대중 살림을 맡고, 또 공양간에 머물다 보니 힘들었던 적도 있어요. 함께 출가한 스님들은 어느새 염불도 하고, 법문도 하는데 저는 예불 한 번 함께 하기도 힘들었으니까요. 매일 콧구멍이 시커멓게 되도록 가마솥에 불 때서 음식 준비만 하니 이거 뛰쳐나가야 하나,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나름 심각했지요.”
하지만 그 마음이 천지개벽하듯 뒤집힌 것도 결국은 공양간이었다.
“하루는 서글픈 마음에 산에 올라 한참을 울었는데, 또 공양 시간이 다 되니 밥걱정이 들어요. 슬그머니 내려와 큰 가마솥에 물을 한가득 받았지요. 그 물을 데우려니 또 그만큼 큰 나무를 집어넣어야지. 그리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났어요. 아, 내가 미쳤었구나! 하고.”
큰 나무는 저 몸 하나로는 결코 타오르지 못함을. 보잘 것없이 마르고, 이리저리 발에 차이는 저 마른 솔가지가 함께 몸을 태워주지 않으면 어떤 불길도 내지 못한다는 것을 그날 스님은 보았다. 마음이 밝아진 순간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날부터 매일 보던 양배추가 말을 걸고, 가지와 호박이 저마다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무심히 흘려보낸 뭇 생명들이 또 다른 스승이 된 시작이었다.
“저 푸성귀 하나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나는 여태 다른 곳만 보느라 못 듣고 못 봤구나. 그걸 알고 나니 자부심이 생겼지요. 그 뒤로는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떨어진 사과의 방편
몇 년 전, 동원 스님은 태풍으로 같은 지역 과수 농가들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망연자실한 농부의 모습을 접한 뒤, 안타까운 마음에 고민하여 만든 메뉴가 바로 ‘사과 냉면’이다.
“반드시 생착즙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1년간 실온보관이 가능하거든요. 김치 할 때도 사과를 갈아서 넣는데, 사과즙을 넣어도 김치 맛의 차이가 크게 없을 만큼 활용도가 높아요.”
낙과(落果)를 이용해 과즙을 만드는 농가를 찾고, 매 강연과 행사, 방송 섭외가 들어왔을 때도 어디서나 사과 냉면을 소개했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어도, 이웃과 더불어 동분서주하며 지냈던 그 계절은 달큰한 사과 향기로 남아 머문다. 이제 매해 여름이 돌아오면 삭발하는 날마다 스님은 이 사과 냉면으로 한 철 무더위를 날린다.
“이 냉면은 면보다 국물이 우선입니다. 사과즙을 이용한 것이니 건강에 좋지요. 여러 음식을 낼 때는 입가심 국수로 마지막에 내는 것도 좋아요. 딱 떨어지는 맛이 꽤 괜찮습니다.”
뽀얀 노란빛의 사과즙 위에 얌전히 앉은 냉면, 그 위의 붉은 오이무침과 아보카도 한 조각까지, 도무지 맛을 예상할 수 없는 반전의 재료가 합을 이룬다. 과연 맛은 어떨까?
먼저 냉면을 한입 넣으니 슴슴한 면발 뒤로 사과의 은은한 단맛과 향기가 상쾌하게 밀려왔다. 얇게 썰어 소금물에 꼬들꼬들하게 데쳐낸 오이 고명은 이 메뉴의 화룡점정! 겨자와 고춧가루, 분량의 양념에 슬쩍 무쳐 짭짤하면서도, 칼칼한 맛은 달큰한 맛이 무뎌질 즈음 절묘한 한 방을 날리는 것이다. 끝으로 한 조각 아보카도의 감칠맛이 더욱 풍성하게 마무리를 해준다.
맛과 향은 물론 비타민 B군과 구연산, 사과산 등 풍부한 유기산으로 피로회복과 면역력 강화에 좋은 사과. 떨어진 사과 한 알에도 새로운 방편이 있음을, 이 향기로운 냉면 한 그릇에서 다시 찾는다.
향기 없는 물이 되어
“스님들이 정말 국수하는 날을 좋아하냐고요? 공양간에 웃으며 들어오기만 할까, 하루종일 공부가 안되는 걸.”
사중의 살림을 맡아 하던 시절, 대중들이 공양 시간에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없었다.
여름이면 메밀국수, 겨울에는 뜨끈한 김치말이 국수. 그 곁에 따끈한 튀김을 곁들여 내는 날이면 선물을 받은 것처럼 설레하던 스님들의 모습. 알타리 김치가 너무 맛있다며 아침 공양에 올려달라고 슬그머니 부탁을 받은 다음 날, 새벽 발우공양 하는 스님 100여 명이 동시에 내던 ‘오도독, 오도독’ 김치 씹는 소리. 고요한 대방에 천둥처럼 울려 퍼지던 그 소리에 다 함께 웃음을 참던 기억도. 또 직접 만든 손칼국수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묘엄 학장 스님의 옛 모습도 모두 귀하고 귀한 추억이다.
이제는 스님의 강의를 들은 청년들과 이웃 종교인들이 ‘스님의 수업을 듣고 불교 교리 강좌를 신청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진수무향(眞水無香) 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는 뜻이지요. 여러 색을 잘 내려면 먼저 내가 가진 것을 덜어낼 줄 알아야 하니까요. 힘들기도 했지만, 실패도 하고 고민도 많던 지난 시간이 있어 진짜 내 안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찰음식이라는 방편을 통해 자신이 전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전하고 싶다는 동원 스님. 그 꿈을 위해 이제는 향기 없는 물이 되어 붉은 열매 한 알을 다시 곱씹는다.
▶한줄 요약
뽀얀 노란빛의 사과즙 위에 얌전히 앉은 냉면, 그 위의 붉은 오이무침과 아보카도 한 조각까지, 도무지 맛을 예상할 수 없는 반전의 재료가 합을 이룬다.
재료
사과 생즙 150ml, 오이 반개, 소금, 설탕, 식초, 고춧가루, 깨, 참기름, 겨자.
만드는 법
1. 오이를 얇게 썰어 끓는 소금물에 부어 놓는다. 잠시 후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한 후 분량의 양념을 1ts 씩 넣어 잘 버무려준다(사과즙 제외).
2. 사과 생즙에 식초, 설탕, 소금, 겨자를 1/2 ts 넣고 연하게 간을 한다.
3. 그릇에 미리 삶아둔 냉면을 담고 국물을 부어준다. 오이 고명을 얹어준 뒤 통깨를 뿌리면 완성.
장보배 작가 hyunbulnews@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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