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엄홍길의 템플스테이]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여러분은 잘 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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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산 '천축사 템플스테이'
도봉산 천축사에 올라 풍광을 바라보는 엄홍길 대장
산악인 엄홍길과 도봉산에 올랐다. 12월26일 새해를 앞두고 눈이 내렸다. 중턱에는 천축사(天竺寺)가 있다. 40분 정도 등산하면 만날 수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아꼈던 천년고찰이다. 엄홍길 대장은 반나절 동안 천축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그는 알다시피 산(山)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산으로 성취를 얻었고 산으로 유명해졌다. 하얀 산길에서 마주치는 등산객들마다 기념촬영을 해주었다. 돌아보면 삶의 시작부터 산이었다.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뛰어놀았다. 고향인 경남 고성에는 거류산이 있고 세 살 때 도봉산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산에는 절이 있다. 산과 가까워지면서 절과 가까워졌다. 불교와 가까워졌고 2018년 불자대상을 받았다. 엄 대장은 스님들 앞에서 스스로를 산이라 했고 인터뷰 내내 산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절과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변하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어주는 것. 천축사에서의 시간은 그 각오에 나무를 몇 그루 더 심어주었다.
‘버림’ ‘비움’ ‘내려놓음’
천축사에 오르자 갑자기 한기가 잦아졌다. 주지 인오스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손수 달인 무차를 건넸다. “바람도 엄홍길 대장님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는 즐거운 인사에 엄 대장은 “무차 덕분에 무아지경”이라고 웃으며 화답했다. 수련복으로 갈아입은 엄 대장은 대웅전으로 향했다. 사시예불 참석이 첫 번째 프로그램. 인오스님은 친절하고 쾌활하다. 흡사 노래를 하듯이 염불을 한다. 트로트를 부르듯 음성을 꺾고 높인다. 열정의 염불이고 젊음의 염불이다.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말끝마다 불교로 마무리된다.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니까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내가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하다 보면 잘 하게 된다.” “불교는 신(神)이 아니라 나를 믿는 것이다.” “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힘을 기르는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여(眞如)를 관통한다.
도봉산을 오르는 엄 대장
엄 대장은 스님의 법시(法施)에 정성을 다해 응대했다. 합장과 삼배는 누가 봐도 절절하다. 그는 정말로 대장의 말투와 걸음걸이를 지녔다. 등산하는 가운데 느꼈다. 뭔가 돌진하면서 나아가는 듯한 보행습관이다. 투박하지만 ‘형님’처럼 말한다. 여전히 밥 먹듯이 산에 가는 게 일상이지만,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겸허히 대한다. 에베레스트에 비하면 도봉산은 쉽게 오르겠다는 질문에 “땀에 흠뻑 젖었다. 힘들지 않은 산은 없다”는 대답이 옹골지게 돌아왔다. 군장 같은 배낭이 매사에 진지한 성품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크고 작은 일은 따로 없다. 모든 일이 등반처럼 절실해야 한다. 작은 일들이 쌓여야 비로소 큰 일이 된다.
도봉산 자락에 있는 천축사
천축사 현판
천축사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인오스님은 ‘버림’과 ‘비움’과 ‘내려놓음’의 철학을 갖고 있다. 천축사 템플스테이에 흐르는 기조다. 버려야, 이룬다. 유난히 열려있는 템플스테이고 쉼표를 강조하는 템플스테이다. 일례로 참가자들이 오면 법당에 ‘눕히는’ 것부터 시작한다. 걱정 근심 다 내려놓고 일단 쉬라고 다독인다. 처음엔 생경해하고 불경스러워하지만 결국엔 눈물을 줄줄 흘린다는 게 스님의 전언이다.
답은 언제나 삶 속에 있다
그렇게 응어리를 털어내면 이른바 ‘좋은 생각 먹여주기’에 나선다. 삶은 막막하고 답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은 본래 괴력을 지녔다. “생각이 현실이고 미래입니다. 운(運)을 좇지 말고 원(願)을 세울 때 마침내 행복이 생깁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절대 화내지 않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에게 화내지 않겠다’ 좋은 생각 먹여주면 날마다 좋은 날이에요.” 답은 본인만 모를 뿐 언제나 삶 속에 있다.
108염주 만들기는 템플스테이의 단골 프로그램이다. 천축사에서는 특이하게도 염주 ‘꿰기’가 아니라 ‘빼기’부터 한다. 지도법사 도울스님이 그 의미를 설명했다. 법명은 순우리말이다. 주지 스님의 인생관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하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비 오는 날은 빈대떡이, 맑은 날은 냉면이 먹고 싶어집니다. 내 마음은 이렇게 수시로 변하는데, 왜 남의 마음은 나에게 한결같길 바라나요?”
가족이 친구들이 ’내 맘 같지 않다‘며 하소연하는 20대들에게 언니와 누나가 되어 들려주는 조언이다.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예쁘다 밉다 너다 나다… 이분법은 실체가 아니라 고집일 뿐이다. “자기가 만든 세상에 자기가 속는 거예요.”
지극한 마음으로 올리는 예불
천축사 주지 인오스님의 온 마음을 다한 예불
천축사의 ‘빼기’는 나를 사랑하기 위한 ‘빼기’다. 엄 대장의 입에는 산(山)이 매달려 있다. “산 같은 산악인, 산 같은 아버지, 산 같은 남편. 산 같은 아들. 산 같은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도울스님은 “산 같은 사람이 되려면 뭘 버리고 비우고 내려놔야 하는지, 한 알 한 알마다 그 마음을 빼라”고 안내했다.
염주 ‘꿰기’ 아닌 ‘빼기’부터
미워하고 억울해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내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며 그리하여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자등명 법등명. 부처님의 유언입니다. 나를 믿고 법을 믿고 가는 게 불교예요.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불교는 이기적이라고 반문하더군요. 아니요. 나를 사랑해야만 진정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 도울스님은 마지막까지 정곡을 찌르며 ‘도왔다.’
점심공양은 고기 한 점 없이도 맛있고 푸졌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엄 대장은 일관되게 진지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쩌면 스님들의 위로는 수없이 목숨을 걸었던 그에겐 괜한 소리일 수도 있다. 원래는 산을 싫어했다. 산에 살았다는 건 산동네에 살았다는 것이고 철없을 때는 가난한 부모를 원망했다. 생각을 고쳐먹고 산에 다가가니까 산을 좋아하게 됐다. 산은 등정과 명예로 보답했다. 숱한 죽음의 위기 속에서 부처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부처님은 언제나 살길을 열어주었다.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히말라야 오지마을 어린이와 죽어간 동료의 유가족을 위해 애쓰는 그는 이미 산이다. 늘 산에 오르고 절에 머무는 그의 삶 자체가 ‘템플스테이’일 것이다.
스님들의 금언(金言)은 외려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천축사 법당에서 사람들이 드러누운 채로 울컥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마다 사연은 달라도 자기가 가엾게 여겨져서이고 그만큼 자기를 사랑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인오스님이 먹먹한 가슴에 그만 구멍을 내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잘 산 겁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생각 하나만 바꾸면 극락이다. 불교의 묘미이자 템플스테이의 묘미다.
주지 스님과의 기념촬영
천축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도울스님
천축사 경내의 청동 불보살상
1965년 스님들이 6년 무문관 수행을 했던 건물
푸짐하게 차려진 점심공양 식단
이날의 특식 '토마토배추찜'
천축사는 북한산국립공원 내 도봉산에 안겨 있다. 우뚝 솟은 선인봉 아래에 서서 남쪽을 바라본다. 소나무 단풍나무 등이 울창한 수림을 이뤄 마치 닭이 달걀을 품은 형국이다. 신라 의상대사가 이 포근한 길지(吉地)에 서기 678년 옥천암(玉泉庵)을 지었다. 12세기 후반 고려 명종 때에 영국사(寧國寺)로 커졌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와의 인연이 더 짙다. 1398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천축사 편액을 직접 하사했다고 전한다. 새로 정한 도읍에서 자기가 세운 나라의 국태민안을 염원한 행위로 읽힌다. 천축사 대웅전에는 다른 절들처럼 ‘大雄殿(대웅전)’이 아니라 ‘天竺寺(천축사)’ 현판이 걸려 있어 이채롭다. 여기서의 천축은 특정 국가 인도(印度)를 뜻하지 않는다. 수려한 산세와 맞물려 정토(淨土)의 기운이 경내 곳곳을 질주한다. 1965년 부처님의 6년 설산(雪山) 고행을 재현해 스님들이 6년 무문관(無門關)에 임했던 건물이 전설처럼 남아있다.
■ 천축사 템플스테이
<당일형>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반나절 동안. 사시예불, 전각 참배, 점심공양, 자율 휴식으로 구성. 참가비 성인 5만원.
<주말 체험형>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일요일 오전 10시까지 1박2일. 천축사 자율투어, 산사뷔페 저녁공양, 스님과의 차담토론, 야경 즐기기, 무문관 수행체험, 새벽예불, 일출 감상 등으로 구성. 참가비 성인 8만원.
※ 수련복은 절에서 제공. 등산해야 하므로 운동화나 등산화 착용. 개인 컵과 물통, 우산 등 준비.
가는 길
<자가용>
내비게이션에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길 92-2 천축사’ 검색. 자가운전으로 오는 경우 1일 전에 미리 차량번호 사찰에 통보하면 도봉매표소 통과(주중만 가능, 주말 등산객 많아 주차 어려움). 도봉매표소 통과한 뒤 마지막 주차장인 서원터주차장 도착. 천축사까지는 도보로 40여분 소요.
<대중교통>
[지하철] 1호선, 7호선 도봉산역 하차 [버스]141번, 142번, 1127번, 1128번을 이용하여 도봉산 종점 하차
도봉매표소(안내소)→도봉서원터(주차장)→도봉대피소→천축사, 도봉산 등산로 따라 산행 길로 약 1시간정도 소요.
종무소 (02)954-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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