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Media report

[법보신문] [먹방시대 공양을 생각하다] 3. 다시 주목하는 공양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3,714회 작성일 22-05-17 10:41

본문

공양은 자신의 삶 돌아보고 천지은혜 감사하는 거룩한 의식


밥 관련 안부가 많은 것은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이루기 때문

밥 거룩함 사라지고 먹방만 양산…음식쓰레기로 연20조 손실

발우는 평등‧채식 공양…오관게는 먹는 일의 거룩함 회복운동


발우공양은 평등공양이며 절약공양이며 청결공양이며 대중공양이며 채식공양이다.[한국불교문화사업단] 
발우공양은 평등공양이며 절약공양이며 청결공양이며 대중공양이며 채식공양이다.[한국불교문화사업단] 

본인은 약 1년 남짓 공양주를 했다. 본래 3년을 하기로 했지만, 2001년 전쟁이 끝난 아프가니스탄의 긴급구호 및 개발지원활동으로 4년간 파견이 결정 나는 바람에 부득이 중단해야만 했다. 당시 사패산터널 개발 반대를 위해 농성 중이신 수경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한철 공양주 생활만 잘해도 평생 먹고살 공덕이 쌓인다”는 격려의 말씀을 들었다. “3년 공양주 생활은 10년 수행한 것과 같다”는 불교 집안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양주 생활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공양 준비하고 아침기도한 뒤 매일 40~50여명의 발우공양을 준비해야 했다. 

아침공양이 끝나면 곧바로 밥, 국, 과일 등의 재준비를 해야 했고, 점심에는 약 100인분의 공양, 법회 때는 200~300인분의 공양을, 절기 때는 400~500인분의 공양을 준비했다. 점심 이후에는 시장을 보러 다니고 돌아와 저녁 공양 준비를 했으며 공양간의 시설공사도 해야 했다. 평소에 부엌일은 거의 해보지 않았던 남자로서 온갖 실수와 시행착오를 했고, 공양바라지를 해주시는 보살님들의 분별과 예측할 수 없는 사건, 복잡 미묘한 갈등조정으로 마음고생 한 것까지 지금 나에게 큰 공부를 시켜준 큰 수행과정이었다. 

그동안 환경운동을 비롯한 사회활동을 해오던 나에게 공양주 경험은 ‘아버지 노동’과 ‘어머니 노동’에 대한 확연한 차이를 깨닫게 해주었다. 남자들의 직장생활이나 사회활동은 돈이 되고 직위가 올라가며 권위도 생기는 노동(지불노동)이지만, 이에 비해 부엌일, 집안일인 어머니의 노동(부불노동)은 돈을 버는 것도, 직위나 권위가 생기는 것도 아니며, 알아주는 일도, 표시가 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어머니노동은 생명을 포태하고 사람을 양육하고 키우는 삶에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 생명살이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노동은 자연을 파헤치고 물건을 만들고 경제를 확대시키지만, 생명을 돌보며, 생명을 다루는 어머니노동이 없다면 생명은 살아갈 수 없거나 제대로 양육될 수 없다. 돈을 버는 아버지노동은 어머니노동의 부불노동의 희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공양간 일은 생색도, 티도 안 나고 심지어 가장 낮은 직위지만, 절집에서 없으면 정말 안되는, 생명을 키우는 공덕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1년 남짓 공양주 생활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반찬을 만들며 밥 짓는 어머니노동이 생색도 티도 안 나지만 거룩한 생명살림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내가 신념껏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때의 공덕 때문이라고 믿고 있고, 지금도 종종 절간 공양주가 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가 있다. 

1985년 처음 불교에 입문하게 된 강력한 동기 중에 하나가 너무도 인상 깊었던 발우공양 체험이었다. 발우를 집을 때 ‘하발게’를 염하고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를 생각하는 ‘회발게’, 공양을 하면서 중생을 위해 축원하는 마음, 보시물과 보시하는 사람, 받는 사람의 삼륜의 청정함을 기원하며 삼귀의를 염하는 ‘전발게’, 법신·보신·화신 부처님과 여러 대승보살께 귀의하며 불법승 계정혜를 닦겠다는 ‘십념’, 부처님과 성인, 일체중생에게 차별 없이 공양을 베풀겠다는 ‘봉반게’,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한 모든 천지자연 중생들의 노고와 공덕을 생각하며 탐욕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약으로 먹겠다는 ‘오관게’, 공양 직전 음식이 수많은 생명의 희생임을 생각하고 왕생을 기원하며 모든 생명이 함께 행복해지는 해탈의 길을 가겠다고 염하는 ‘정식게’,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하며 마음을 닦아 불도를 성취하겠다는 ‘삼시게’, 밥을 먹고 발우를 깨끗이 씻고 배고픔에 고통 받는 사람에게 베풀겠다는 ‘절수게’를 염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어 압권은 모든 공동체대중들이 차별 없이 공유하고 논의를 모으는 불교민주주의 꽃인 대중공사였다. 또한 마지막으로 고통의 중생계에서 절대평등의 세계로 가자는 ‘해탈주’로 마무리하면서 거룩하고 장대한 이 대서사를 매일 밥 먹으며 스캐닝한다는 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감동이었다. 

발우공양에는 모든 것을 나누고자 하는 평등정신이 있다. 조실스님이나 갓 들어온 행자도 똑같이 음식을 나누며, 식탐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는 약으로 먹겠다는 보살심을 일깨우는 절약공양이다. 또한 음식을 한 톨도 남기지 않을 뿐 아니라 물이 나갈 때도 깨끗하게 버리는 청결공양이다. 또한 공양을 마치면 대중이 함께 민주적으로 논의하는 대중공양이다. 여기에 더해 육식이 없는 채식공양이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서양과 달리 우리는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유독 밥과 관련된 인사를 많이 한다. “식사하셨습니까” “밥은 먹고 다니니” “언제 식사나 같이 합시다” 등이다.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부모님들도 항상 “끼니 거르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우리는 삶과 건강에 있어 밥을 지표로 삼는다. “살기 위해 먹는다” “밥이 보약” “밥술이나 먹고 산다” “밥벌이는 좀 한다” “밥숟갈을 놓았다”라는 말처럼, 밥을 먹는 일이 삶의 최대의 일이며 밥을 잘 먹는 일이 잘사는 척도였다. 이뿐 아니라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이란 의미의 ‘식구(食口)’ ‘밥상머리 교육’ ‘밥상공동체’ 그리고 최근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녁이 있는 삶’까지 밥을 같이 먹는 가족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희구하는 문화가 다시 주목받은 바가 있다. 

이렇듯 밥을 어떻게 먹는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I am what I eat)’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물질과 영양이 나의 피와 살, 각종 조직을 만들고 구성했으며, 먹는 방식, 먹는 문화와 그 관계가 나의 정신과 혼을 만들었다. 자연과 우리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자연물에서 채취한 음식을 섭취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동학에서는 생명(하늘)이 생명(하늘)을 먹는다고 하여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 했다. 김지하 시인은 그의 책 ‘밥’에서 ‘밥은 육체의 밥이요, 물질의 밥이며, 동시에 정신의 밥이요, 영의 밥이다. 그래서 밥을 우리는 생명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이어 그는 ‘밥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함께 협동해서 만든 것이며, 풀, 벌레, 흙, 공기, 바람, 눈, 서리, 천둥, 햇빛과 볍씨와 사람의 정신 및 육체적인 모든 일이 다 같이 협동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쌀이요 밥’이라고 말한다. 

‘밥을 좀 먹고살게 된’ 현대 한국사회에서 이제 밥의 거룩함은 사라지고 ‘끼니를 때우는’ 것이 되었다. 인스턴트 식품이 넘쳐나고, 밥 외에 빵과 과자, 라면, 피자 등 먹을 것도 넘쳐난다. 지구촌 한 켠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은데도 우리나라에서 1년에 1만4000톤의 음식물쓰레기가 배출되어 연간 8000억 원의 처리비용을 쓰고 연 2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대부분 음식을 집에서 해 먹기보다 학교나 식당, 또는 음식점에서 사서 먹는 매식(買食)이 훨씬 많아졌다. 음식이 상품화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혀끝의 맛을 탐닉하게 되었고, 자극도 강해져 식탐을 유발하는 문화가 더욱 발전했다. 여기에 ‘고독한 미식가’ ‘냉장고를 부탁해’ ‘수요미식회’ ‘집밥의 여왕’ ‘삼시세끼’ ‘한끼줍쇼’ ‘골목식당’ 등 TV 프로그램과 먹방 유튜브를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탐식을 대중적으로 자극하며 온통 먹는 게 아니면 프로그램이 안 될 정도로 먹방 투성이로 편성되어있다. 

최근 코로나 시대에 배달음식이 성행하면서 음식물과 포장 쓰레기가 더욱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혼밥, 혼술시대 같이 밥을 먹는 밥상공동체는 사라지고, 요사이 어린이들은 고기반찬이 없으면 안 먹는다고 할 정도로 육식 소비가 넘쳐나고 있다. 육식을 위한 축산업이 기후 위기에 약 18%정도 기여를 할 만큼 심각한데도 말이다. 

공양은 그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천지은혜에 감사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오늘날 기후위기의 극복은 밥에 대한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실제 이를 교육하기 위해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이들 활동가들에게 불교의 ‘소심경’과 발우공양의 정신은 더욱 주옥같은 교전이 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3소식 운동을 벌여왔다. 즐겁게 먹는 소식(笑食), 적게 먹는 소식(小食), 육식대신 채식을 권장하는 소식(蔬食)이 그것이다. 먹는 일의 거룩함을 다시 회복하는 소중한 운동이다. 최근 각 사찰에서 ‘소심경’을 현대적으로 암송하는 곳이 많아진 것도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 한 예는 다음과 같다. ‘한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민의 노고가 스며있으며, 한 올의 실타래에도 베 짜는 이의 피땀이 서려 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이러한 3소식 운동과 공양게가 널리 대중화되어 식사가 거룩한 공양임을 자각하고 생활 속에 깃들게 하는 일이 기후위기 시대에 대단히 중요하다. 2000년 중반 불교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 160만 명의 서약까지 이끌어 낸 ‘빈그릇운동’은 바로 발우공양이 사회화된 성공적인 캠페인이었다. 이제 ‘빈그릇운동’ ‘공양게송 외우기운동’ ‘육식줄이기 채식운동’ ‘함께먹는 공동체식사운동’ 등은 ‘소심경’과 발우공양의 정신 그리고 문화를 다시 현대화하고 지구위기를 극복하는 소중한 밥상 살리기 운동이 될 것이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녹색불교연구소장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녹색불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