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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먹방시대 공양을 생각하다] 4. 생태·자립공동체 실상사 작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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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3,519회 작성일 22-05-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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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발우공양으로 뭇 생명 소중한 인드라망 정신 일깨워


끼니 때마다 약식 발우공양 진행하며 무소유 지혜 실천 

모든 생명과 자연 연결돼…함부로 훼손하지 않도록 지도

직접 농사지으며 친환경 음식 자급, 연기적 세계관 배워


하수용 작은학교 대표는 “발우공양 의식은 다른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공동체의식 함양과 음식에 욕심내지 않고자 연습하는 수행”이라고 말했다. 

하수용 작은학교 대표는 “발우공양 의식은 다른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공동체의식 함양과 음식에 욕심내지 않고자 연습하는 수행”이라고 말했다. 


아침식사 메뉴는 밥, 채소만두·고기만둣국, 김치찌개. 큼지막한 사발에 야무지게 담고 각자 오관게(五觀偈)를 외운 뒤 수저를 들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아무도 남기지 않는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숭늉을 부어 남은 반찬으로 그릇을 닦아 마셨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생도 없다. 잠시 식사를 못 마친 친구를 기다리더니 다 같이 자리를 정돈하고 미리 담아둔 설거지물을 찾는다.


김율(3학년·16) 양은 “남기는 음식과 물, 세제 사용을 줄여 마을을 오염시키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사용한 물은 하수도가 아닌 학교 옆 생태마을의 늪으로 흘러간다. 이를 지켜보던 최숙경 공양간 선생님은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돼 있음과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도록 지도한 덕분인지 학생들의 생태적 감수성이 풍부하다”며 기특해했다. 이날 식사 당번이었던 박귀민(3학년·16) 양도 “처음엔 그릇을 씻어 먹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며 “환경오염 심각성에 대해 배우고 직접 농작물을 재배해 보니 자연스레 하게 됐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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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실상사 작은학교 전경.  

4월11일, 불교계 첫 대안학교 전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대표 하수용)를 찾았다. 작은학교는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알고 뭇 생명의 어머니인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드라망 교육철학으로 학생들에게 생명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또 매주 월요일 발우공양을, 끼니마다 약식 발우공양을 진행하며 필요한 만큼 소유하고 소비할 줄 아는 무소유의 지혜를 실천한다.

오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공양간에선 정식 발우공양 준비가 한창이다. 바라지를 담당하는 학생들이 반찬과 청수를 운반한다. 발우를 꺼내 가지런히 내려놓자 그 주변으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조용히 와 앉는다. 이윽고 12시 정각이 되자 죽비소리와 함께 모두 합장하고 ‘소심경’을 외우며 공양이 시작됐다. 부처님을 상기하며 외는 회발게(回鉢偈)를 시작으로 발우를 펴면서 전발게(展鉢偈), 불보살의 명호를 외는 십념(十念)까지 염송한 학생들은 바라지들이 들고 돌아다니는 청수로 그릇을 닦아낸 뒤 봉반게(奉飯偈)를 외며 어시발우를 이마 높이로 세 번 올렸다 내렸다. 이어 밥과 반찬을 옮겨 담고 오관게를 외며 밥알을 2~3알씩 헌식기에 모았다. 바라지가 헌식기를 중앙에 놓자 학생들은 두 손을 모으고 생반게(生飯偈)를 외며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을 헌식기를 향해 튕겼다. 그 후 두 손을 단전 앞에 포개고 청수 발우를 보며 정식게(淨食偈), 다시 합장하고 삼시게(三時偈)를 외운 뒤에야 식사가 시작됐다.

먹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발우를 들어 입을 가리고 음미한다. 
먹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발우를 들어 입을 가리고 음미한다.

강당은 수저와 발우가 부딪히는 작은 울림만 공명했다. 학생들은 허리를 곧게 펴고 발우를 입가에 가져와 음식을 입에 넣었다. 공양을 거의 마치자 바라지가 숭늉을 돌렸다. 발우에 적당히 따르고, 남겨놓았던 무와 김치 조각으로 깨끗이 닦아 마신다. 이어 처음 받았던 청수를 어시발우에 부어 국·밥·반찬을 담았던 순서로 옮겨가며 손으로 닦아낸 뒤 절수게(節水偈)를 외며 퇴수통에 물을 버린다. 바라지는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합장, 해탈주(解脫呪)를 염송하며 발우를 접었다.

윤진혁(3학년·16) 군은 이날 발우공양에 대해 “평소 엄숙하게 해왔지만 이번엔 뚜껑을 떨어뜨리는 등 실수가 많아 아쉬웠다”며 “이 음식을 마련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공양했다”고 말했다. 박성연(3학년·16) 군은 “함께 공양하기 때문인지 처음엔 식사 속도를 맞추기가 힘들었다”며 “익숙해진 지금은 친구들과 일심동체인 느낌이 들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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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이 끝나자 학생들은 앞다투어 남은 음식을 모으고 퇴수통과 반찬그릇을 공양간으로 옮겼다. 몇몇은 어느새 대걸레를 가져와 청소 중이다. 이런 학생들의 자립심은 동반자이자 안내자로서 함께하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크다.

작은학교의 학생들은 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부모의 곁을 떠나 선생님들과 ‘작은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작은가정’은 5~6명의 학생들과 선생님 한 명으로 구성되며 ‘실상사 작은마을’에 집을 얻어 함께 생활한다.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마다 전 교직원·학생모임도 갖는다. 모임은 배경희 시인의 천천히 성장하자는 의미가 담긴 ‘달팽이의 노래’를 합창한 후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자치기구들의 일정 공지 등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선생님은 조언자 역할로, 생활 규칙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건 학생들이다.

작은학교 7기 졸업생으로 3년째 함께 하고 있는 양창목(29) 선생님은 “학생들과 같이 살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재학 당시 항상 너그럽고 화목한 분위기로 이끌어 주었던 선생님들이 졸업 이후에도 지켜봐주고 응원해주어 기억에 많이 남았다”며 “작은학교 학생들이 남에게 무시당하거나 폭력으로 상처받는 일 없이 성장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실상사 작은학교 개교부터 현재까지 21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온 김태훈(50)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길을 안내해 줄 뿐”이라고 말했다. 김 선생님은 “작은학교 선생님들은 ‘지도’라기보다 ‘함께’ 의문점을 해결해나간다”며 “생태·자립·공동체 가치를 중심으로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은 각자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삶의 방향을 잡는다”고 말했다. 이어 “단지 여기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연을 맺은 것”이라며 “자기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학생들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볍씨를 파종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볍씨를 파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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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망 정신을 일깨워주자는 교육철학에 따라 학생들은 친환경적 먹거리 자급을 위해 직접 땀 흘려 농사지으며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을 배운다. 이날 학생들은 새벽같이 등교해 작은학교 대표이자 농사 과목을 담당하는 하수용(35) 선생님을 따라 모판을 옮기며 볍씨 파종을 도왔다. 파종된 모판들은 오후에 작은학교 고등과정인 4·5학년 ‘언니네’ 학생들이 직접 논에 낙종한다.

하수용 실상사 작은학교 대표. 학생들에게 농사 실습을 지도한다.
하수용 실상사 작은학교 대표. 1기 졸업생이기도 하다. 

“작은학교는 실상사 담장 옆 컨테이너로 시작했어요. 입학식 때는 컨테이너도 없었지요. 그럼에도 저는 행복했어요. 선생님들과 산과 논을 뛰어놀며 보낸 학창시절이 삶에 준 영향이 무척 큽니다. 후배이자 제자들에게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돌아왔습니다.”

하수용 선생님 얘기다. 작은학교 1기 졸업생인 하 선생님은 연극, 건축, 인문학, 농사 등 다양한 공부를 하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주목하고 생태가치 실천과 교육을 위해 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농사 과목을 담당하며 실습을 통해 학생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이날 오전 내내 모판 작업에 몰두한 하 선생님의 옷은 흙먼지와 모래로 가득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은 직접 모를 심고 수확해보며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인드라망 정신을 강조하는 작은학교의 교육철학이자 발우공양을 진행하는 이유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몸을 희생해 먹을 것을 베풀어주는 자연과 음식을 마련해주는 모든 이들의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며 “발우공양 의식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공동체의식 함양과 음식에 욕심내지 않고자 연습하는 수행”이라고 말했다. 

매일 농사를 짓고 시설과 학생들을 관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매일 학생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행복하다. 그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배우고 있다”며 “학생들이 공동체 안에서 주변을 사랑하고 배려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많이 되돌아보게 된다”고 밝혔다. 또 “자신만의 생각이 잡히는 중요한 시기에 자기 주체로 주변인과 화합하는 경험은 장차 훌륭한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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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에는 학생들이 직접 그린 ‘밥이 하늘입니다’라는 그림이 붙어있다. 새파란 하늘에 인드라망 문양을 배경으로 쌀밥이 가득 담긴 거대한 밥그릇이 논 위에 서 있고, 그 주변으로 천진난만한 학생들이 웃으며 만세를 부른다. 공양과 친환경적 생태가치를 중요시하는 작은학교의 교육철학이 학생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이사장 법인스님의 철학수업.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사장 법인 스님의 철학수업. 스님이 학생들의 취미를 공유, 덕담해주고 각종 성대모사를 하는 덕에 수업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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