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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절밥 한 그릇에 외국인 홀렸다…"내 보물" 밝힌 사찰계 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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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2,700회 작성일 23-11-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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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천진암의 정관스님. 세계적인 사찰음식의 대가다. 천진암 장독대에는 20년 묵은 간장 등 갖은 장이 세월과 함께 무르익고 있다. 

백양사 천진암의 정관스님. 세계적인 사찰음식의 대가다. 천진암 장독대에는 20년 묵은 간장 등 갖은 장이 세월과 함께 무르익고 있다. 


고요한 산사에서 잠들고, 소박한 절밥을 먹는 짧은 여행.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이고 더 풍족한 것을 좇는 도시의 일상이 다소 버겁다고 느껴진다면, 템플스테이만한 대안도 없다. 느리고 심심한 여행이 주는 평온함을 몸소 깨우칠 수 있어서다. 늦가을 전남 장성 백양사 템플스테이에 다녀왔다. 내장산국립공원 백암산(742m) 자락의 백양사는 정갈한 사찰음식과 그윽한 풍경으로 널리 알려진 산사다. 1박 2일간 한 거라곤 ‘잘 쉬고 잘 먹고’가 다였으나, 긴 여운이 남았다.


경지에 오른 절밥 


나물 겉절이를 만드는 정관스님. 이날은 10년 숙성 감식초, 7년 숙성 간장, 두부장 등으로 간을 했다(왼쪽 사진). 그의 음식과 요리 철학을 배우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참가자들이 찾아온다. 백종현 기자 

나물 겉절이를 만드는 정관스님. 이날은 10년 숙성 감식초, 7년 숙성 간장, 두부장 등으로 간을 했다(왼쪽 사진).

그의 음식과 요리 철학을 배우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참가자들이 찾아온다. 백종현 기자 


20년 묵은 간장으로 발효한 두부장, 10년 된 감식초를 곁들인 나물겉절이, 우리네 ‘단짠’의 진수의 보여주는 표고버섯 조청 조림…, 특급호텔이나 고급 한정식집에서 내놓는 음식이 아니라, 백양사 천진암에서 맛본 절밥의 면면이다.


사찰 음식의 대가로 통하는 정관스님의 거처가 백양사의 비구니 수행 도량인 천진암이다. 정관스님은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 뉴욕타임스 등에 소개된 뒤 세계적인 음식 거장으로 떠올랐다.


지난 10일 천진암을 찾았다. 정관스님은 “내 보물 1호가 여기 있다”며 대웅전 앞 장독대에서 손님을 맞았다. 그의 아담한 장독대에는 긴 세월을 묵힌 여러 장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20년 이상 숙성했다는 씨간장 독을 열자 이른바 ‘간장소금’ 결정이 가득했다. 진한 빛깔로 단단히 굳은 것이 보석이나 마찬가지였다.


정관스님의 보물1호는 갖은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독대다. 

정관스님의 보물1호는 갖은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독대다.


음식 체험에 초점을 둔 전국의 템플스테이 가운데 백양사 ‘정관스님의 사찰음식 수행’이 단연 인기가 높다. 서울에서 3시간 이상 차로 이동해야 하고, 세태의 유행과도 동떨어져 있지만, 체험자가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한 해에만 981명이 다녀갔는데 그중 536명이 외국인이었다. 30명을 정원으로, 한 달에 서너 차례밖에 열지 않아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백양사 관계자는 “매월 15일 오전 9시에 다음 달 예약을 받는데, 인기 가수 콘서트 티켓 경쟁 못지않다”고 귀띔했다. 한 스님도 “정관스님은 음식계 스타이고, 사찰계의 BTS”라고 거들었다.


정관스님은 ‘요리하는 철학자’로 통한다. 이날 요리 시연에서도 조리법보다는 “자연과 부처의 자비한 마음으로 장이 익는다” “적게 먹어야 정신이 가벼워지고 버리는 에너지가 없다” 같은 설법(說法)에 더 집중했다. 정관스님은 이날 시그니처 음식인 표고버섯 조청 조림을 비롯해 나물 겉절이, 수삼 튀김, 가죽나물 장아찌 등을 냈다. 정관스님은 시식에 앞서 수경스님(전 화계사 주지)이 쓴 『공양』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이 밥으로 땅과 물이 나의 옛 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정관스님이 내놓은 상차림. 표고버섯 조청 조림과 알토란 들깨탕, 무전과 수삼 튀김, 나물 겉절이, 

정관스님이 내놓은 상차림. 표고버섯 조청 조림과 알토란 들깨탕, 무전과 수삼 튀김, 나물 겉절이


약사암에서 굽어본 가을


예년보다 단풍 때깔이 곱지 않지만 백양사 경내 곳곳이 붉게 물들어 있다. 

예년보다 단풍 때깔이 곱지 않지만 백양사 경내 곳곳이 붉게 물들어 있다.


절밥만 맛본 건 아니다. 첫날은 법복으로 갈아입고, 명상에 나서고, 합장(合掌)‧오체투지(五體投地) 같은 불교 예법을 배웠다. 이튿날은 오전 4시 30분 새벽 예불을 드리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맑은 공기 덕인지 정신이 금세 맑아졌다.


내장산국립공원의 품에 있는 백양사는 사찰음식 이전에 화려한 가을 풍경으로 유명해진 장소다. 애석하게도 올해는 변덕스런 날씨 탓에 단풍이 예년만 못했다. 백양사의 가을을 특별하게 장식하던 ‘애기단풍’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연못에 비친 쌍계루의 운치나, 백암산의 백학봉 암벽을 등에 진 대웅전의 기품은 여전했다.


백양사 뒤편의 거대한 암벽이 백암산 백학봉이다. 

백양사 뒤편의 거대한 암벽이 백암산 백학봉이다.


백학봉 중턱 약사암에서 백양사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백학봉 중턱 약사암에서 백양사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절을 떠나기 전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과 한 잔의 차를 앞에 두고 앉았다. 일정표에는 ‘특별 법문과 법전 이야기’라고 딱딱하게 적혀 있었지만, 실은 다정한 분위기의 고민 상담에 가까웠다. 속세의 불만을 토로하는 중생들에게 스님이 말했다.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오와 지나친 욕심은 남이 아니라 결국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백양사는 고즈넉한 풍경 덕에 사계절 탐방객이 끊이지 않는다. 

백양사는 고즈넉한 풍경 덕에 사계절 탐방객이 끊이지 않는다. 



장성=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