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찰에선 여름에 무엇을 할까?
양기 가장 센 단오·여름 한복판 유두(流頭)
부채 나누고 보살계 받으며 무더위 번뇌 극복
보양식 대신 '채개장' 먹으며 복날 보내는 풍습
견우직녀 칠석날엔 남녀 맺어주는 사찰 '눈길'
여름이면 연꽃이 만개하는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
사찰마다 배롱나무에 붉은꽃 뽐내는 여름. 만물을 생장시키고 온갖 기운이 왕성한 여름이다. 음력 4월과 5월, 6월을 여름절기로 분류하지만 실제로는 입추(立秋)가 지난 8월 중순까지도 더위가 한풀도 꺾이지 않으니 여름이라 볼만하다. 이 여름, 사찰서 스님들은 무슨 일을 할까. 에어컨 아래 시원한 맥주 대신 사찰에서는 어떤 음식으로 여름철 더위를 이겨낼까. 사찰의 여름철 세시와 여름특식을 알아보자. 불교세시풍습을 연구해온 구미래(문화재위원) 불교민속연구소장의 의견을 두루 참고했다.
여름기운이 가장 왕성한데다 연중 양기(陽氣)가 가장 센 단옷날(음5.5). 사찰에선 ‘단오부채’ 가 인기다. 입춘 달력만큼이나 단옷날 절에서 나누는 단오부채는 더위를 극복하고 건강한 여름나기를 서원하는 경건한 의식이다. 단옷날 해인사 ‘소금 묻기’는 화기를 제압하는 풍습이지만 마음 속 번뇌까지 잠재우는 청정수행 가풍이다. 통도사는 단옷날 용왕재를 지내고 대웅전부터 공양간까지 전각의 들보머리에 얹혀 있던 소금단지를 새 소금으로 교체하는 의식을 치른다. 통도사 대광명전 내부에는 좌우 천정 밑 도리에 화마를 물리치는 항화마진언(抗火魔眞言)이 묵서로 적혀 있다.
감자캐는 운력을 하는 울진 불영사 스님들.
소금을 나누는 통도사 여름풍경.
소금묻는 행사를 하는 해인사 스님들.
조계사 ‘화기애애(和氣愛愛) 단오법회’는 화기(火氣)를 누르고 화기(和氣)를 더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흥미로운 축제다. 무엇보다 주지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팔순의 노보살 신도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창포 삶은 물에 발을 씻어드리는 세족식은 잘 알려져 있다. 더위와 우환을 물리치고 마음 속 화마까지 누그러지길 기원하는 풍경이다.
음력 6월 보름은 여름의 한복판 ‘유두(流頭)’다. 올해는 8월1일이다.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로 시원한 계곡을 찾아 물맞이로 하루를 즐기는 풍속이 성행했다. 고려시대에는 국사와 왕사 고승대덕이 주재하는 가운데 국왕이 보살계를 받는 ‘보살계 도량’을 개설했다. 유두날 보살계 도량을 연 것은 유두에 머리와 몸을 씻는 풍습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재계의식과 통하기 때문이라는 통설이다.
해인사 스님들의 단옷날 풍경.
음력 7월7일 칠석날이 올해는 8월22일이다. 칠성신은 북두칠성을 뜻하는데 하늘이 인간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던 옛 사람들이 북두칠성이 곧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며 섬겼다.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지배한다는 도교사상의 영향으로 체계화된 칠성신앙은 조선중기부터 사찰에서도 수용했다. 농사지은 쌀 한말을 이고 절에 올라가 칠성각 칠성신에 시주하는 풍경은 흔했다.
1980년대까지만도 칠석날 사람들이 부처님오신날 못지 않게 찾아와 칠성각 앞에 신도들이 길게 줄을 서서 가져온 공양물을 칠성단에 차려놓고 독불공을 드렸다. 자식의 수명장수를 서원하면서 국수와 실타래, 소창과 미역, 대추, 밤, 과일 등을 차려놓고 스님은 각자의 아들딸 이름과 생년월일을 호명하며 수명장수와 지혜총명과 부귀영화를 발원하고 신도들은 절을 올리며 대대적인 축원기도가 이어졌다.
칠석풍습이 예년만큼 활발하지 못하지만 최근 일부 사찰에서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기반으로 미혼남녀의 소중한 인연을 맺어주는 칠석법회도 연다. 하동 쌍계사는 ‘선남선녀들이 사랑의 인연을 맺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날’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8월22일 칠석날 아침 대웅전에서 법회를 열고 ‘칠석특식 국수공양’을 할 예정이다. 해인사도 매년 동형쌍불 비로자나부처님에 대한 헌항 헌화와 시낭송 음악회 등으로 칠석다례행사를 치른다.
칠석기도를 마치고 복숭아의 복자를 따서 복을 나누고 있는 조계사 풍경.
여름철 날씨의 약점은 폭염 말고도 ‘비’가 관건이다. 여름 가뭄이 극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장마가 길어지거나 폭우까지 동반하면 사찰에서는 날이 개기를 빌며 기청제를 올리곤 했다. ‘고우(苦雨)’라고 불릴 정도로 비가 재해가 되면 산에 있는 사찰의 경우 피해가 막대하다. 여름비가 고통스러운 고우가 아니라 부처님 자비처럼 윤택한 ‘택우(澤雨)’, ‘감우(甘雨)’가 되기를 스님들의 기도는 끊이지 않았다.
여름철 절에서 먹는 사찰특식은 더위에 축 쳐져 허해진 기운을 달래는 음식들로 가득하다. 일반인들이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등 보양식으로 원기를 회복한다지만, 육식말고도 사찰 특유의 훌륭한 복날 음식이 많다. 올해는 7월11일(초복), 7월21일(중복), 8월10일(말복)이 삼복이다. 복날에 사찰에서 만들어 대중들과 함께 나누는 식물성 보양식으로 이른바 ‘복을 짓는 음식’으로 채개장과 여름별미 콩국수, 들기름 메밀국수, 애호박만두, 보리된장비빔밥이 있다.
한여름 고추를 말리는 의정부 회룡사 옛 모습. 불교신문자료사진.
단백질 보충은 물론 영양만점 사찰식이다. 특히 잎이 넓은 여름채소는 몸을 들뜨게 하는 열을 가라앉히고 몸의 기를 통하게 해준다. 숙성의 계절 여름에는 체내 소화흡수 기능과 신진대사가 활발해서 몸에 노폐물이 많이 쌓이는데 섬유질이 많은 풋고추, 오이, 애호박, 가지, 감자 등을 사용한 음식이 제격이다. 애호박된장찌개, 차조기 옥수수전, 수박껍질 무침, 가지냉국, 감자옹심이 미역국, 콩잎장아찌 등은 스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름음식들이다.
사찰음식명장 선재스님은 “열이 많아지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여름에는 몸이 쉽게 지치고 기운이 빠지는만큼 음식으로 에너지를 잘 보충해야 한다”며 “복날 삼계탕이나 장어 같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그 안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우리 몸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도록 돕는 사찰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마음도 편안해지는 진정한 몸보신”이라고 강조했다.
여름특식 사찰음식을 무시하지 말라. 원기회복하는 보양식들이 가득하다.
애호박 만두. 사찰 대중 스님들이 가장 애호하는 여름특식.
감자옹심이 미역국은 여름철 스님들의 보양식.
콩국수는 맛과 영양 만점이다.
육개장보다 영양 높은 건강식 채개장이다.
풋고추장떡도 여름 별미다.
노각무침은 여름에 먹어야 달고 맛나다.
사찰의 여름풍경은 그 어느때보다 싱그럽다. 생기 넘치는 여름산사에 가서 여름특식을 맛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