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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아무리 힘들어도 안 무너지는 ‘내 마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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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댓글 0건 조회 179회 작성일 24-11-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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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 템플스테이] 영천 은해사

천년고찰 은해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사람을 위로한다. 은해사 운부암 툇마루에 걸터앉은 영남대 ‘정각동문회’ 회원들. 
천년고찰 은해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사람을 위로한다. 은해사 운부암 툇마루에 걸터앉은 영남대 ‘정각동문회’ 회원들. 

종교는 어딘가 낡아야 한다. 방금 만들어져 화려하고 번쩍이기만 하는 성물(聖物)은 왠지 신성성이 떨어진다. 종교성의 숨겨진 요소 가운데 하나가 역사성이고, 신앙은 시간적으로 얼마나 끈질겼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판가름 난다. 예스러워야 신비롭다. 공간적으로도 멀고 더뎌야 한다. 낡고 헤진 채로 외딴곳에 떨어져 있어야 위안이 되고 공감이 된다. 자신의 다친 마음 같아서일 것이고 가까스로 살아온 마음 같아서일 것이다. 사전적으로 ‘도를 닦기 위해 지은 소형의 가옥’을 가리키는 암자(庵子)는 이른바 ‘절 안의 절’이다. 아주 옛날부터 수행만이 아니라 쫓기는 몸을 숨기거나 요양하려고 찾는 자기구조의 기능을 갖는다. 오래된 큰절들은 하나같이 여남은 개의 암자를 머금고 있다. 대들보는 늙어서 친근하고 조그마한 탑은 균열이 많아 아름답다.

‘숨넘어갈’ 만큼의 행복  

은해(銀海)는 부처님과 보살과 나한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겹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부풀면 절경이어서도 그렇다. 서기 809년에 창건된 은해사(주지 덕조스님)는 동화사와 쌍벽을 이루는 팔공산의 대찰이다. 팔공산은 성산(聖山)이며 크고 두텁게 형성된 봉우리들은 녹색의 대불들처럼 보인다. 원효·의상·지눌·일연 등 한국사에 한 획을 그은 고승들이 전부 거쳐 갔다. 조계종 제10교구본사로서 경북 영천시를 비롯해 군위군 청송군 대구시 경산시에 위치한 종단 소속 사찰들을 관할한다. 부속 암자로는 기기암, 백흥암, 운부암, 거조암, 중암암, 묘봉암, 서운암이 있다. 고려시대 건축물인 국보 제14호 거조사 영산전을 보유한 거조암은 21세기 들어 거조사로 승격됐다. 이보다는 못 미쳐도 다른 암자들의 나이 역시 삼사백년이다. 은해사의 자랑이고 별미다.

'은해사 7암자’를 소재로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당일 오후와 저녁은 본찰에서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산골짜기 작은 절들을 거닌다. 운부암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하다 해서 ‘운부암(雲浮庵)’이다. ‘신일지(新日池)’라 불리는 드넓은 저수지를 따라 걷는다. ‘구름 위에 떠 있다’는 은유는 그만큼 높이가 제법 된다는 의미이다. 은해사 중심에서 2.5km가량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경사가 완만해 성인 걸음으로 힘내어 빨리 걸으면 1시간 안에 입구에 닿는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한결 더 상쾌하다. 호젓하고 고졸하며 옛것의 미학을 다룰 때 흔히 가져다 쓰는 수사(修辭)가 여기서도 넉넉히 적용된다. 좀 더 오르면 백흥암인데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처이고 부처님오신날과 백중에만 일반에 개방하는 투철함을 간직하고 있다. 묘봉암은 석굴 위에 얹은 집으로 정사각형 모양의 큼지막한 바위에 걸쳐 있다. 다른 암자들도 본디 선승(禪僧)들의 공부방이다. 올라갈수록 낯설고 신묘하며, 경치가 수려할수록 심장은 터질 것 같다. 깨달음이든 등정(登頂)이든, ‘고됨’을 혹독히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높이’라는 기쁨이다. 시련과 고난은 슬픔이 아니라 어떤 비용과 같은 것이다. 투자라고 믿어야, 슬픔이 덜하다. 

‘불교 같지 않은 불교‘의 호소력 

산 위에선 도(道)를 구하는 데에 여념이 없고 산 아래에선 도를 나눠주는 일로 바쁘다. 템플스테이가 청년과 불교를 이어주는 가교라면 은해사의 템플스테이는 대교와 맞먹는다. 지역의 대학생들을 절에서 꾸준히 하룻밤 재우며 고민을 들어주고 희망을 제시한다. 영남대 불교동아리 ‘정각회’의 재건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69년에 창립됐다가 탈종교화 바람 속에 40년 만에 소멸 위기에 처했는데 지난해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전국 모든 대학에 불교동아리를 만들자는 ‘상월결사’ 대학생 전법불사의 역량과 단결이 빛을 발했다. 은해사 주지 덕조스님이 직접 43일간 인도를 걸었다. 

나이 든 선배들의 도움도 든든했다. 10월26일 영남대를 졸업한 불자들의 모임인 ‘정각동문회’가 은해사에 와서 예불을 하고 암자를 순례했다. 86세대인 스님과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사찰에 구름처럼 몰려들던” 1980년대에 대한 향수가 진하다. 불교가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사람을 모아야할지가 차담의 화제로 떠올랐다. 계획은 다들 원대하고 진심인데 현실은 여의치 않거나 데면데면하다.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된 과거의 학생은 어른들과는 도무지 말도 섞으려하지 않는 요즘의 학생들이 답답하다. 물론 눈앞의 대상이 미남미녀나 일확천금이 아니라면 누구나 달려들면 달아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모든 ‘개저씨’들은 적극적이다. 덕조스님은 <금강경>에 명시된 제상비상(諸相非相)의 지혜에 밝다. 불교를 ‘불교’라 하면 이미 불교가 아닌 것이다. 불교를 낮추고 희석함으로써 외려 불교로 상대방의 가슴을 녹이는 타자 지향적 접근법에 해박하고 항상 실천하고 있다. 가르치기보다 들어주는 것, 이끌어가기보다 지켜봐주는 것의 가치가 간만에 빛나는 밤이었다.  

종교는 어딘가 낡아야 하고 또한 멋지면 안 된다. 볼품없어야 하고 어리숙해도 괜찮다. 상대방이 친절하고 따뜻하고 심지어 만만해보여야 비로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법이다. 비워낸 마음에 불교가 섞이고 스님들의 헌신이 섞이면 훗날 놀라운 저력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이 늘 신기하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부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 잘난 맛에 취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도끼 썩는 줄 모른다. 운(運)이 시들해지고 재능이 무너지면 그때서야 부처님 앞에 와서 운다. 이럴 때는 반드시 암자가 그의 곁에 있어줘야 하는데 그 외로움과 버팀이 너무나 눈부시기 때문이다. 

■ 은해사 템플스테이

내 발길 닿는 곳… 암자!!(1박2일)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암자순례, 새벽예불 및 명상, 천연염색 체험 등.

찾아가는 길 

[주소] 경북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 은해사

영천터미널에서 은해사행 버스 탑승. 택시로는 15~20분 정도. 

문의: (054)335-3308

예약: www.templest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