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와 달마고도, 힐링의 시작과 끝
[한경 머니 기고=양보라 여행전문기자]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저마다 휴가 계획을 세우는 데 분주한 시점이다. 화려한 도시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럭셔리한 호텔을 추천하고, 이국적인 풍광을 좇는 이들에게는 해외 유명 여행지를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권하는 여름 휴식처는 따로 있다. 바로 사찰이다.

심산유곡의 절에서 묵는 템플스테이. 절집에 잠시 머무르는 일만으로도 힐링은 멀지 않다. 사찰에 머무르며 그윽한 풍경 속을 걸어볼 심산으로 전남 해남 미황사를 찾았다.

취재형 인간의 번뇌가 시작되다
미황사는 정말 땅 끝의 절이었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버스로 5시간 30분, 해남 버스터미널에서 절까지 승합차로 30분이 더 걸렸다. 오후 2시 드디어 미황사에 도착했다. 피로감이 잦아들 만큼 절은 자태가 빼어났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다도해가 내려다보이고 절 뒤편에는 달마산이 펼쳐졌다.
미황사와 달마고도, 힐링의 시작과 끝
미황사와 달마고도, 힐링의 시작과 끝
가까운 절을 놔두고 해남까지 내려간 이유가 있었다. 장장 7박 8일 이어지는 미황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를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참선이 중심이 된 프로그램인데, 힘들기로 소문난 템플스테이에 사람들이 앞 다퉈 참가 신청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까닭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로부터 2박 3일 맛보기 체험을 허락받았다. 사실 미황사에 오기 전부터 마음이 달떴다. 취재를 핑계로 맑은 공기를 쐬며 맛있는 사찰음식을 먹고 쉬다 올 요량이었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마음이 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오후 2시 템플스테이 수련관인 청운당에 참가자들이 집결했다. 먼 길 달려온 중생에게 차 한 잔 내주시려나 기대했는데, 비구니 스님은 “수행에 불필요한 물건을 대신 보관해 두겠다”고 말했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분명 ‘소지품 검사’였다. 모두가 휴대전화와 지갑 따위를 내놨다.

“잘 오셨습니다. 예까지 오는 길도, 예까지 오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수행의 하나였을 겁니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의 따뜻한 환대에 긴장이 조금 누그러졌다. 스님은 준비와 각오를 하라는 ‘엄포’를 잊지 않았다. ‘참사람의 향기’는 몸보다 정신을 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정 내내 묵언 수행은 기본이고 매일 6시간 이상 참선을 해야 한다. 가볍게 마음을 먹은 것이 머쓱했다.

그날 저녁부터 바로 묵언 수행과 참선이 시작됐다. 짝, 죽비 소리가 울리자 반가부좌를 틀었다. 남 일을 묻고 다니는 게 밥벌이인데, 쉽게 집중이 될 리 만무했다. ‘취재형’ 인간의 번뇌가 시작됐다. 이 자리에 모인 각자의 사연, 사찰음식 레시피, 금강 스님의 과거(?)를 캐고 싶었다. 아뿔싸. ‘장군죽비’를 든 스님이 앞에 섰다. 일반 죽비보다 2배는 더 길었다. 맞기 좋게 어깨를 수그렸다. 짝, 짝, 짝. 차진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튿날 오전 5시. 스님의 염불 소리에 잠에서 깼다. 고요한 절간에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울렸다. 비로소 침묵이 즐거웠다. 살아 숨 쉬는 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내가 고마웠다. 절에서는 밥을 먹는 것도 수행이었다. 점심은 발우공양이었다. 내 발우(그릇)에 담긴 밥과 찬을 모조리 비우고 발우에 물을 부어 헹군 물을 마셨다. 공기 좋은 곳에 오면 왜 그렇게 배가 고픈 건지, 오후 내내 저녁 시간을 기다렸는데 당근주스만 나왔다. 공양의 즐거움을 빼앗긴 기분이었지만, 스님 말씀대로 몸이 가벼우니 참선 시간에 다리와 엉덩이가 덜 아팠다.
미황사와 달마고도, 힐링의 시작과 끝
셋째 날은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 공양을 하고 나서 오전 내내 참선이 이어졌다. 절에서 두 밤을 보냈지만 참선은 전혀 익숙해지지도 쉬워지지도 않았다. 입 다물고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있느라 진땀이 났다. 참된 내가 무엇인지 답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대신 진득하게 나를 대면했다. 땅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만났다.

호미와 곡괭이로 빚은 길
미황사는 템플스테이 말고도 유명한 것이 또 있다. 절 뒤로 병풍같이 펼쳐진 달마산의 7부 능선을 잇는 트레킹 코스 ‘달마고도’다. 길의 출발점이 미황사다. 달마고도는 여행자 사이에서 ‘명품’으로 불린다. 큰돈을 치러야 걸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장인의 손길로 완성된 명품처럼 정성으로 빚은 길이어서 붙은 별명이다.

미황사에서 만난 문화해설사 전희숙 씨는 “예전에는 미황사에 도착하면 경내로 들어서기 바빴지만, 요즘에는 절 옆길로 샌다”고 말했다. 이제 달마산에 찾는 등산객은 산 정상을 정복하는 대신, 해발 220m에 있는 미황사 옆길을 통해 달마산 7부 능선을 따라간다. 17.74㎞ 이어진 길을 완주하는 데 어른 걸음으로 6시간 30분 걸린다. 달마고도 4개 코스 중에 우선 1코스(2.7㎞)를 걸었다.
미황사와 달마고도, 힐링의 시작과 끝
미황사 일주문을 정면에 두고 왼편 달마고도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푹신한 흙길이었다. 후박나무, 때죽나무 등 활엽수가 둥그스름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어 따가운 볕을 막아줬다.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가 아니라 산을 에두르는 길이어서 버거운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었다. 이내 의문이 들었다. ‘명품’이라는 소문이 무색하게 달마고도는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달마고도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은 길이에요.” 전 해설사의 말을 듣고 그간 걸었던 트레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달마고도에는 딱딱한 데크로드가 없었다. 트레일에서 데크로드를 마주할 때마다 정취가 깨졌는데, 달마고도는 오로지 흙길과 낙엽길만 있었다.
인공 시설물을 최소화한 달마고도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길일 수도 있겠다. 데크로드는 물론이고 여행자를 위한 의자나 정자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편의시설이 없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길을 걷다 지치면 바위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가볍게, 경쾌하게 호젓한 산길을 그리 걸었다.

밤이 깊어갈 즈음,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과 차담을 나눴다. 금강 스님은 달마고도를 기획한 주인공이었다. 달마고도 개통 이후,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도보 여행객이 찾아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불편하시겠다는 말로 운을 뗐다. 스님은 “소란이 외려 줄었다”는 의외의 답을 했다.
미황사와 달마고도, 힐링의 시작과 끝
미황사와 달마고도, 힐링의 시작과 끝
“달마산이 험준하다 보니 해마다 등산객이 다치는 일이 서너 번 발생했습니다. 구조 헬기가 뜨면 온 산이 진동했지요. 걷기 좋은 달마고도가 생긴 뒤로 사고가 없어져서 경내가 더 고요해졌습니다.”

금강 스님은 1989년 미황사에 부임한 이후로 안전한 길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줄곧 품어 왔다. 전남의 지원으로 2014년부터 논의가 본격화됐다. 스님은 ‘걷기 편한 길’을 원칙으로 삼고 길을 구상했다. 불편한 길을 억지로 오르려니 바위에 구멍을 뚫고 밧줄을 달아 자연을 망가뜨린다고 판단했다.

금강 스님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길을 정비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고 말했다. 사람이었다. 2017년 2월부터 하루 평균 40명의 인부가 삽, 호미, 곡괭이로 꼼꼼하게 길을 다듬었다. 중장비를 썼으면 달포 만에 마무리될 작업이 아홉 달이나 지속됐다. 공사에 동원된 연인원이 1만 명. 전남도청이 지원한 예산 13억5000만 원 중 90%가 인건비로 쓰였다. 그렇게 미황사 주변 암자와 암자 터를 잇는 달마산 옛길(古道)이 복원됐다. 길이 완공되자 스님이 ‘달마고도(達摩古道)’라고 이름을 지었다.
미황사와 달마고도, 힐링의 시작과 끝
다시 달마고도를 걷기 위해 출발했다. 전날은 구름이 낀 탓에 알지 못했는데 우거진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전 해설사가 “달마고도 1코스는 서해를, 2코스(4.37㎞)와 3코스(5.63㎞)는 남해를, 미황사로 되돌아가는 4코스(5.03㎞)는 다시 서해를 벗하는 길이다”라고 알려줬다.
그는 2코스를 달마고도 중 백미로 꼽았다. 2코스 시작점부터 해남 북평면과 완도를 잇는 완도대교가 눈앞에 드러났다. 걷는 내내 완도와 옥빛 남해를 곁에 뒀다. 전 해설사가 구수한 사투리로 ‘싸게 싸게(빨리 빨리)’ 걷지 말고 ‘싸목싸목(느릿느릿)’ 걸으라고 일렀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바위가 깔린 비탈 ‘너덜겅’이 등장했다. 바윗돌에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달마고도에 크고 작은 너덜겅이 20여 곳 있었다. 규암 덩어리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군데군데 부서져 내린 흔적이었다. 3코스를 걸을 때는 땅 끝이 손에 잡힐 듯했다. 4코스는 달마고도에서 가장 그윽한 숲길이었다. 산길을 오르는 일은 고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쉬엄쉬엄 달마산을 누비니 머리가 개운해졌다. 완주에 꼬박 8시간이 걸렸지만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았다.

“평생을 부처님처럼 살다 간 미황사 큰 스님들도 산길을 거닐며 수행했지요. 달마고도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복잡하고 우울한 마음을 물리칠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길 바랍니다.”

양보라 여행전문기자는…
단연코 여행의 재미는 소비에 있으며 온갖 살 것이 넘치는 메트로폴리탄이야말로 궁극의 여행지라고 믿어 왔다. 인생의 분기점을 넘은 것인지, 자연으로 파고드는 여정이 즐거워졌다. 이제 막 걷기 여행의 매력에 눈을 뜬 초보 트레커다. 걸어보지 않고는 못 배길 국내외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를 소개할 예정이다. 중앙일보와 월간지 트래비 여행 기자로 글을 써 왔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1호(2019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