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관 스님 “ ‘같이 먹어야지’ 하며 떠올리는 마음, 그것이 자비입니다 ”

장회정·사진 정지윤 기자

우관 스님과 함께 만난 사찰음식

우관 스님 “ ‘같이 먹어야지’ 하며 떠올리는 마음, 그것이 자비입니다 ”

프랑스 스타 요리사도 한 수 배워 간다는 ‘음식 대가’ 감은사 주지 우관 스님의 공양간을 들여다봤다. 선반 가득한 색색의 천연 조미료, 5년 이상 숙성한 각종 발효액들…소박하지만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공간“음식은 혼의 교류예요. 정성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나누는 거죠. 그게 이 산속에서 제가 할 일이에요.”

“할머니가 휙 스쳐 지나가네요.”

후루룩 국물을 한술 뜬 사진기자가 한 말이다. 지난여름 따서 말려두었던 방아잎이 들어간 된장찌개에서 그는 30년 전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그 맛을 기억해낸 것이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이천 감은사 주지 우관 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의 사찰음식 전문위원 5명 중 한 명으로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찰음식 전문가다. 도락산 자락에서 수리부엉이, 고라니와 벗 삼아 지낸 지 어느덧 9년째다.

“공양부터 합시다.” 취재진의 시장기를 눈치챈 스님이 공양간으로 안내했다. 공양간에는 점심 찬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한번 지져낸 깻잎장아찌는 보들보들했다. 사과말랭이와 더덕무침은 고유의 향과 단맛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참가죽나물·무말랭이 무침과 고구마줄기 김치는 씹는 맛이 경쾌했다. 간이 슴슴하면서 끝맛이 알싸한 것은 갓김치인 줄 알았는데 쌈채용 잎사귀를 거두고 남은 윗줄기로 담은 적겨자채김치라고 했다. 튀김옷에 계피가루를 섞어 살짝 향을 입힌 뒤 잣나무순 발효액을 넣은 소스에 버무린 밤튀김은 튀김을 좋아하지 않는 스님이 한 번 먹고 일 년을 난다는 특식이다. 반찬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염치 불고하고 밥 한 주걱을 더 담았다. 무와 두릅장아찌, 두부, 시금치 등속을 넣은 김밥까지 집어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졌다.

스님은 진딧물이 끼어 작년의 3분의 1밖에 수확을 못한 산초 열매 이야기로 무덥고 가물었던 지난여름의 ‘고통’을 들려주었다. 전기요금 걱정만 하던 도시인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이야기였다.

대가의 공양간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양념 선반에는 색색의 천연조미료가, 조리대 아래칸에는 백련초, 오미자, 솔잎, 보리수 등 발효액이 빼곡했다. 발효액은 외부 창고를 거치며 기본 5년 이상 숙성한 것이다. 지금의 적요함은 계절 탓일 수도 있다. 억세진 깻잎은 이미 장아찌가 되었고 끝물 고추는 고추지로 쟁여놓은 참이다. 겨울을 맞는 공양간은 김장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스님은 “이제는 도 닦는 일밖에 없지”라며 천진하게 웃었다.

절 주변에 나눠주고도 남을 만큼 자라는 돼지감자는 감은사의 특산물이다. 집간장과 매실 발효액으로 장아찌를 담그기도 하고 고춧가루 넣어 깍두기로도 먹는다. 생으로 갈아서 마시기도 하고, 얇게 썬 뒤 데쳐서 말려두었다가 주전부리로도 삼는다. 잘 먹지 않는 잎은 살짝 데쳐서 말린 뒤 차로 마시면 뿌리차만큼 맛있다. 꽃은 꽃대로 쪄서 말려 차로 즐기니, 지천에 널린 돼지감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절집에서는 콩나물 대가리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곱게 갈아 김치 쫑쫑 썰어넣고 지짐으로 먹는 게 공양간의 예다. 사찰음식이 수행식이라고 하는 건 이처럼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헤아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김없이 먹는 데에 있다.

“요즘은 사는 게 어렵고 힘들다보니 먹는 것으로 위로를 삼는 게 하나의 장르처럼 형성됐어요. 가장 쾌락적인 것, 쉽게 말해 오욕락(五欲樂·재욕, 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에 치중하다보니 더 달콤하고, 더 새콤하고, 더 짭조름한 자극적인 맛에 열광하는 거죠. 맛을 느끼면 도파민이 생성되면서 얻는 쾌감이니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자각은 해야지요. 이걸 먹으면 얼마나 더 이득인가를 따질 게 아니라요. 개·돼지도 조금 이상한 건 안 먹어요.”

음식에 있어서만은 가성비를 따지지 말자는 말이다. 비를 맞고 바람을 쐬고 햇빛을 쬐며 자연의 일부로 생장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내 몸이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고 스님은 말한다. 꼭 직접 농사를 짓고 무농약 유기농을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절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식재료가 있어요. 흔한 게 또 가장 싸요. 그 식재료와 직접 담근 간장·된장·고추장과 발효액, 천연 조미료를 가지고 만드는 거예요. 용기도 알루미늄이 아닌 스테인리스나 유리로 만든 것을 사용하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정성스러운 마음을 갖는 겁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혼의 교류예요.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을 먹음으로써 좋은 에너지를 나누는 거죠.”

3년째 밖으로 문을 걸어잠그고 수행 중인 무문관 스님들을 찾는 날, 우관 스님은 밤새 준비한 도시락을 한 아름 안고 갔다. 두부에 견과류를 넣어 빚은 패티를 끼운 뒤 쪄낸 연근찜을 메인으로 팽이버섯 깻잎말이, 밤튀김, 통팥을 넣어 만든 양갱 등을 가지런히 담았다. 좁은 방에 앉아만 있는 분들을 위해 탄수화물은 최소화하고 천연 소화제 매실장아찌를 추가했다.

“음식은 배려예요. 노인이 드실 음식은 거칠지 않게 곱게 다듬는 바로 그 마음이에요. 식재료는 청정하게, 조리법은 유연하게. 그것이 요리를 하는 여법(如法)함이죠.”

1988년 출가한 우관 스님은 인도 델리대학교 불교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미얀마 등지에서 수행을 하다 귀국해 자재정사 양로원에서 노스님과 할머니들을 돌보며 매끼 100인분의 밥을 지었다. 2009년 대한민국 사찰음식 대향연에 죽과 밥을 내놓으며 단박에 사찰음식계의 ‘스타’가 되었고, 미슐랭 별 세 개를 단 프랑스 레스토랑 요리사가 한 수 배우고자 하는 대가가 됐음에도 우관 스님은 ‘요리사 스님’이라는 타이틀이 ‘내 옷’ 같지 않았다. 요리사란 곧 ‘이치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만드는 음식을 누군가가 먹고 행복해하고 에너지를 얻으면 그게 보람이고, 기쁨이지요. 그게 곧 나눔의 맛이고. 전 음식을 통해서 사람을 보는 거예요. 그게 이 산속에 앉아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는 교류인 거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공덕. 그게 내가 할 일이에요.”

먹는 즐거움이 궁극으로 치닫는 요즘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사찰음식 전문점이 도심에 속속 들어서고 스님들의 손맛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맛에 팔리면 몸을 잃는다”고 말한 우관 스님은 저서 <보리일미>를 통해 사찰음식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상생의 음식이라고 전한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같이 먹어야지’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잖아요. 그것이 사랑이 깃든 자비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충분한 감동을 누렸을 때 그 파장으로 세상이 공명하는 거죠. 그러니 올바른 음식을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죠? 말 그대로 단순하게 먹는 일, ‘식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한 그릇의 사랑이자, 힘이에요.”

우관 스님 “ ‘같이 먹어야지’ 하며 떠올리는 마음, 그것이 자비입니다 ”

▶우관 스님이 추천하는 ‘이 계절에 먹으면 좋은 음식’
>>사진 문덕관(lamp studio) 제공

☆생들깨우엉밥

우관 스님 “ ‘같이 먹어야지’ 하며 떠올리는 마음, 그것이 자비입니다 ”

톡톡 터지는 들깨와 아삭한 우엉의 식감이 좋아서 가을이면 깨가 들어간 들깨송이를 탈탈 털어 채썬 우엉과 함께 넣어 밥을 한다. 우엉은 섬유질이 풍부해 배변활동을 돕는 기특한 채소다.

재료: 백미 2컵, 생들깨 반 컵, 우엉 200g, 물 1과 1/5컵

1 백미는 깨끗이 씻어 1시간 정도 충분히 불린다. 2 우엉은 껍질을 벗기고 길이 5㎝ 정도로 곱게 채썬다. 3 생들깨는 거름망에 담아 흐르는 물에 씻은 뒤 물기를 뺀다. 4 전기밥솥에 백미와 물, 생들깨를 넣어 섞고 채썬 우엉을 올린 뒤 잡곡 메뉴를 눌러 밥을 한다.

☆연근호두된장찜

우관 스님 “ ‘같이 먹어야지’ 하며 떠올리는 마음, 그것이 자비입니다 ”

향도 없고 맛도 세지 않은 연근은 어떤 식재료와 만나도 맛을 상승시키는 후덕한 재료다. 특히 연근은 견과류와 맛 궁합이 좋다.

재료: 연근 400g, 호두 60g, 청양고추·홍고추 1개씩

양념장: 된장·매실발효액·들기름 1큰술씩, 다진 생강 1/2 작은술

1 연근은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구멍 송송 단면이 보이도록 1㎝ 두께로 자른다. 2 호두는 칼등으로 다지고 청양고추와 홍고추도 잘게 다진다. 3 양념장 재료에 호두와 고추를 넣어 섞은 뒤 연근 위에 올린다. 4 김이 오른 찜통에 넣고 10분 정도 찐다.

☆새송이솔잎구이

우관 스님 “ ‘같이 먹어야지’ 하며 떠올리는 마음, 그것이 자비입니다 ”

송이버섯이 부럽지 않은 맛이다. 쫄깃한 새송이에 솔향을 덧입힌 이 맛을 우관 스님은 “소나무 아래에서 마음까지 쉬는 맛”이라고 표현했다.

재료: 새송이버섯 400g, 솔잎 50g, 고운 소금 1작은술, 들기름 2큰술

1 새송이버섯은 흐르는 물에 살짝 헹구고 반 갈라 사선으로 칼집을 낸다. 2 칼집 낸 새송이버섯에 소금을 뿌려 재워두고 솔잎은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둔다. 3 달군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중약불에서 새송이버섯을 가볍게 굽는다. 4 살짝 구운 새송이버섯 위에 솔잎을 얹어 향이 배도록 뒤적이며 노릇하게 구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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