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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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3   |  발행일 2016-02-03 제30면   |  수정 2016-02-03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한과
한과

한과(韓果)는 우리나라 전통 과자다. 순우리말로 과줄이라고도 했다. 과줄은 과일이 나지 않는 계절에 곡물 등으로 과일 모양을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효시는 인도에서 과일을 불전에 공양하는데 날씨가 더워지고 우기가 겹쳐 과일을 수확할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과일 모양을 만들어 불전에 공양을 올리게 된 것이 시초가 아닌가 추측된다.

중국사람들도 밀가루, 설탕, 유지 등을 적당히 배합해 과일모양을 만들었다. 이를 당나라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해 당과자(唐菓子)라고 불렀다. ‘果’라는 말은 삼국유사 가락국기 수로왕조에 처음 등장했는데 수로왕묘제수에 ‘果’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 행사를 비롯해 차 마시는 풍습이 성행하면서 유과도 함께 쓰였고 다식문화도 발달했다. 고려시대에 와서 유과는 사찰에서 차 문화를 적극 발전시킴에 따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졌다. 통일신라시대 불교행사의 제물로 사용되던 유과가 고려시대에는 귀족층의 기호품으로 크게 유행했다. 충렬왕 2년 고려왕실에서는 몽고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할 때도 유과를 잔칫상에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과줄은 임금님의 상에도 오르고 통과의례 상차림에도 올라가는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 됐다.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한과
<전통음식전문가>

과줄이 크게 유행하고 사치스러울 정도가 되자 조정에서는 과줄 금지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조선왕조의 법전 ‘대전화통’에는 “헌수, 혼인, 제향 이외에 조과를 사용하는 자는 곤장을 맞도록 한다”는 규정이 기록돼 있다. 한과는 농경문화 발달로 인해 곡식 생산량이 점차 증가하고 불교가 성행하던 시절 육식을 기피하는 불공음식으로 많이 쓰이면서 신라, 고려시대에 발전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예’를 중시하는 유교사상에 힘입어 제례, 혼례, 회갑 등 의례 음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상류층의 기호식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조선왕조 500년 역사 속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한 상차림 음식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과줄의 주재료인 찹쌀은 소화를 돕고 위장을 보호하며 꿀, 밤, 대추 등은 비타민 등이 풍부하다. 별도의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잘 변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강정은 찹쌀을 발효시킨 뒤 기름에 튀기기 때문에 잘 상하지 않고 각종 정과류도 조청에 오래 졸여 만들기 때문에 쉽게 상하지 않는다. 한과의 종류는 유과를 비롯해 강정, 약과, 매작과, 다식, 정과, 과편, 엿강정 등 다양하다. 옛날에는 설날 세배 온 아이들에게 세뱃돈 대신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라는 덕담과 한과를 나눠 주기도 했다. 의례음식과 기호식품으로 인기를 누리던 과줄은 1900년대 이후 서양과자와 설탕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우리 전통 한과를 찾는 이가 점차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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