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 누리집 로고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윤석열정부2년 민생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윤석열정부 2년 민생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콘텐츠 영역

오솔길 솔향기에서 문득 ‘나’가 그립다

[명상여행] 청도 운문사

2014.07.25 위클리공감
인쇄 목록

사색을 부추기는 노송들.
사색을 부추기는 노송들.

청도 운문사의 솔숲은 깊다. 더디게 사색하고 싶은 푸른 숲이 천년고찰을 따라 이어진다. 300년된 노송들은 몸만 비틀 뿐 들썩임이 없다. 수줍은 산사의 솔숲에 한점 바람이 얹힌다.

녹음이 무르익으면 청도 운문사에 간다. 여승들만이 수양하는 천년고찰이다. 길섶에서 만나는 스님들은 모두 수줍은 얼굴이다. 밀짚모자를 쓴 나지막한 어깨에 말이 없다. 운문사의 솔숲은 세인들의 잡담이 담장을 넘지 못하는 길목에 가지런히 들어서 있다.

꼭 경외로움이 아니더라도 운문사까지 쏜살같이 달려가지는 못한다. 초입부터 늘어선 솔숲에서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한다. 운문사의 숲은 고요하고 풍성하다. 암자와 암자를 잇는 숲길은 사색의 오솔길이다. 청신암에서 내원암으로 향하는 숲길에는 운문사 들머리의 솔숲과 함께 참나무·전나무·소나무 자연림이 우거져 있다. 운문사 마당에 아침햇살이 닿을 때에도 청신암 숲길만은 산그림자에 묻혀 있다.

1,500년 세월의 대가람인 운문사 경내.
1500년 세월의 대가람인 운문사 경내.

예불 뒤 스님들의 행렬.
예불 뒤 스님들의 행렬.

방향을 잃고 세파에 비틀린 노송들

솔숲에는 100년 된 소나무부터 200~300년은 됨직한 노송들이 깊고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잔가지마저 세파에 기울어진 소나무들은 방향을 잃고 몸을 비틀어 뒤섞는다.

정갈한 다기에 우린 차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정갈한 다기에 우린 차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칼집을 낸 생채기도 선명하고 또렷하다. 그 애처로운 불협화음 속에서 짙은 솔향이 뿜어져 나온다.

사찰의 아침은 솔향기가 묻어나는 낮은 담장에서 시작된다. 돌이끼가 남은 담벽에는 목을 길게 뺀 꽃들이 어깨동무를 한다. 여름이 무르익으면 돌담은 푸르름으로 채색된다. 담장 너머 텃밭에서는 저녁공양을 준비하는 스님들이 허리를 굽히고 무를 뽑느라 열심이다. 즉석에서 한입 쓱 베어 물기도 한다. 땡볕에 그을린 스님들의 얼굴은 사과꽃처럼 모두 발그레하다.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운문사는 1,500년 역사를 지닌 대가람이다. 유서 깊은 고찰답게 경내에는 석탑·불상 등 7개의 보물이 있다. 수령 400년이 넘는 ‘처진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데, 스님들이 해마다 봄·가을로 막걸리 열두 말을 보시해 아직도 싱싱하고 푸르다.

청도의 맛 추어탕. 청도식 추어탕은 국물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청도의 맛 추어탕. 청도식 추어탕은 국물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여승의 승가대학까지 품은 운문사는 닫힌 사찰이다. 솔향만 은은할 뿐 깊고 닫혀서 더욱 마음이 가는 곳이다. 호거산 낮은 자리에 위치한 대웅보전이 있는 본전은 누구나 넉넉한 발걸음으로 들를 수 있다. 평지에 위치한 사찰. 세인들의 눈높이로 운문사는 그런 모양새를 지녔다. 운문산, 가지산, 비슬산이 둘러싼 운문사는 연꽃의 한가운데 꽃술로 안긴 자태다.

앞이 탁 트인 암자들은 구름 타고 다니는 제비형이라며 그런 곳에 오래 있다 보면 마음도 뜨는 법이라고 했다. 운문사가 운문호를 내려다보지 않고 그윽한 일몰이 없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다행이다. 몸이 낮아도 운문사는 속인과 도량의 경계가 확연한 곳이다. 사찰 곳곳에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고 스님들과의 대화도 익숙지 않다. 기도처인 사리암으로 가는 길 역시 신도가 아니면 오르지 못하며, 북대암은 절벽처럼 가파른 곳에 고고하게 숨어있다.

청도에 위치한 감와인 체험장인 ‘청도 와인터널’에서 맛보는 감와인. 이곳은 지난해 100만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청도에 위치한 감와인 체험장인 ‘청도 와인터널’에서 맛보는 감와인. 이곳은 지난해 100만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운문사와 숲길들이 운치를 더하는 것은 예불 때문이다. 서쪽 능선 너머로 해가 지면 산중의 오케스트라가 시작된다. 경내의 시끌벅적한 구경꾼들이 빠져나간 뒤 가사를 걸쳐 입은 스님들이 범종루에 오른다. 호거산 자락을 한차례 응시한 뒤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연이어 목어와 운판의 두드림, 들짐승과 날짐승·물짐승의 해탈을 염원하는 소리에 슬며시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닫고 작은 미동조차 멈춘다. 법고 소리는 크고 힘차게, 작고 여리게 반복된다.

예불하는 동안 댓돌 위에 올려진 흰 고무신은 그립고 단아하다. 예불 뒤 장삼 위에 짙은 감색의 가사를 입은 여승들의 행렬은 앳되고 아름답다. 저녁예불의 감동은 솔향기에 이어 저녁공양의 구수한 밥냄새가 스러질 때까지 은은하게 남는다.

운문호가 보이는 운문산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운문사의 식단은 정갈하다.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이 직접 농사 지은 국거리로 국을 끓이고 배추와 무로 김치를 담근다. 마늘과 파,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운문사의 음식은 언제 먹어도 속이 편안하다. 해가 저물면 그 단아하고 정갈한 캔버스 위에 운문사의 혼과 낮은 음성이 실린다.

운문사 텃밭을 일구는 스님들. 운문사 음식은 언제 먹어도 건강
운문사 텃밭을 일구는 스님들. 운문사 음식은 언제 먹어도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게 한다.

운문사의 여운은 경내와 솔숲을 벗어나도 잔향이 묻어난다. 운문사를 빠져나오면 운문산 자연휴양림과 운문호가 자리 잡았다. 딱따구리 우는 휴양림에서의 하룻밤은 운치를 더한다. 운문호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옛집 한 채가 덩그라니 놓여 있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의 운곡정사는 운문댐 건설로 터전을 옮겼지만 자태만은 곱고 그윽하다. 선암서원, 운강고택 등 청도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옛집들이 참 많다.

운문사 가는 길의 운문호.
운문사 가는 길의 운문호.

글과 사진·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위클리공감]

이전다음기사 영역

하단 배너 영역

지금 이 뉴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