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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亡羊의 휴가’로 창의력 재충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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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7-31 06:00:07   폰트크기 변경      
   
 구상회(ID컨설팅 대표)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왔다. 올해는 특히나 지루한 장마와 무더운 폭염으로 긴 여름을 맞을 것 같다. 최근 경기 침체로 많은 기업들이 생산성에 부담이 안 가는 범위 내에서, 에너지 절약과 비용 절감을 위해 차라리 휴가비는 줄이더라도 휴가 기간을 늘리려는 추세라 한다. 지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가계 사정도 안 좋은데 주위에서 다들 떠난다는 가족휴가를 안 갈 수도 없는 딱한 실정이다.

 선진국처럼 연차를 모아 한 달여씩 장기 휴가를 떠나거나 연중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도 없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서, 여름휴가는 대부분의 샐러리맨이 가족과 함께 휴가다운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기에 앞으로 1년간의 에너지 축적을 위해서도 알차게 계획해야 한다

 수년 전 한 카드사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광고카피가 유행이었지만, 그것도 경기가 좋을 때 부담 없이 신나게 떠날 수 있는 시절의 얘기다. 요즈음 같아서는 ‘힘겹고 지친 당신!  간소하게 떠나라’가 제격이 아닐까 싶다.

 과거 휴양지 선호 지역으로는 대부분 유명 해변, 등산 관광지, 대형 리조트 등이 뽑혔으나 최근에는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다양화하고 있다. 고즈넉한 산사에서의 템플스테이나 농어촌 일손 돕기, 산골마을 체험, 오지 탐사 등으로 저마다 특색 있는 휴가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긴박한 업무의 강박관념 속에 살아가는 직장인에게는 번잡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무상념, 무스트레스의 휴양지를 선택하는 방안도 괜찮을 듯 싶다. 아이들에게는 부족한 학업 보충도 필요하고, 남들 다 보낸다는 외국 연수나 체험도 필요하겠지만, 하루하루 입시공부에 찌든 심신을 달래는 방안으로 농어촌 체험이나 자연과의 교감을 갖는 체험시간이 오히려 필요할 수 있다. 정부에서도 청소년의 특색 있는 체험활동에 대해 인증을 부여하고 입시에 반영도 된다 하니 참고해 봄직하다.

 요즈음 5쌍의 부자(녀)가 여행을 하며 농어촌 일상 체험을 하기도 하고 제시된 과제를 해결하면서 겪게 되는 작은 난관을 함께 풀어가는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는 것도 대부분 가장들이 바깥 생활에 바빠 평소에 소원할 수밖에 없는 부자 간에 새록새록 정을 쌓아 가는 모습과, 아빠의 추억 살리기, 아이가 자연의 섭리를 알아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아련한 추억 속에 자리 잡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휴가 때 아이들이 “아빠 어디로 가?” 라고 물으면 TV도, 핸드폰도, 마트도, 컴퓨터도 없는 원시 시대의 자연으로 간다고 하면 어떨까.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적한 섬마을 바닷가나, 백두대간의 심심산골이나, 아니면 차마고도 같은 외국의 오지에서 자연 생태와 순박한 인정(人情) 속에서 생활하며 명상과 가족애를 다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올해 아들녀석이 고3이라서 가족휴가를 갈 상황이 못 되는데, 산악회에서 중앙아시아 톈산산맥으로의 해외 원정 등반대에 참여하라고 부추긴다. 일반 대원은 가격도 저렴하다고….

 23년 전 대기업 근무 시절, 사표를 던지고 에베레스트 원정 갔을 때 카투만두 공항 근처에서 처음 알현한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 베이스캠프에서 무서울 정도로 짙푸른 쪽빛하늘을 봤을 때 느꼈던 대자연의 신비한 경이로움. 이것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가야겠다는 충동으로 미안하지만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8일간만 등반대에 참여키로 하였다. 지금까지 힘겨울 때마다 새로운 용기와 동기를 부여해주고 참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며 나에게는  정신세계의 끈이 되고 있는 대자연의 정기를 다시 한번 느끼려 한다.

 통신 수단의 발달과 소득 수준의 증대로 정보의 홍수 속에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유희 지향적인 유명 관광지에서 도시생활의 패턴을 이어가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심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힐링 장소로 휴가를 떠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한 고전철학 교수는 “모든 것이 물심적 마케팅을 지향하는 이 척박한 시대에 소유의 삶을 모두 내려놓고 잠시나마 새로운 길을 나서보는 것을 권장한다”고 하였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정신적인 쉼과 물심(物心)의 비움을 통해 새로운 창의적 발상을 위한 잠재력을 충전하라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서와,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이나 옛 성현들의 득도(得道)를 위한 가르침 서(書)를 지참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양치는 목동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신선을 만나는 꿈을 꾸거나 때론 독서 삼매경에 빠져, 기르던 양들을 모두 잃는 ‘亡羊’의 휴가라 할 지라도, 지나간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창의적인 휴가를 떠나보면 어떨까.

 평소 괴짜 친구들과 자연을 벗삼아 향유하며 과거 급제에도 실패했던 두메산골의 선비, 박지원이 삼종(三宗)을 따라 간 단 8일간의 청나라 여행에서 새로운 문명과 사조를 발견하고 <열하일기>를 집필하여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떠올랐듯이 내공(內攻)을 다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휴가가 되길 바란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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